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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드디어 남산에 오르다

드디어 남산에 오르다


아침에 일어나 남산을 바라보니 제법 푸른 색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매일 아침 남산을 오르고 싶었는데
미세먼지가 폐 속에 들어가면 어쩌구 하는
tv 속 전문가의 겁박에 겁을 먹고 자제를 했다.

드디어 오늘 아침 남산에 오를 기회가 왔다.
바람도 살랑살랑거렸다.
그래도 몰라서 마스크를 했는데
호흡이 어려웠다.

낼 모레 고등학교 친구들과

산에 가는 날에 대비해서 매일 몸을 풀어야 했는데
그리 하지 못 한 까닭인지,

아니면 마스크 때문이지
숨 쉬는 일이 정말로 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산 정상에 오르고 보니
반가운 손님이 보였다.
일주일 만에 보는
구름 속의 해,
그리고

반가운 손님을 맞는
까치.







여성 안심 귀갓길?


호텔에서 나와 골목길을 오르다 보니 

길바닥에 쓰여 있는 사인이 눈에 들어 왔다.

세상의 모든 길이 

누구에게나 다 안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남산 공원 입구.

참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그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조성된 길


그런데 그 놈의 미세먼지 때문에---




아내의 등 뒤에 보이는 둥근 지붕의 건물이

예전엔 '어린이 회관'이었다.

어린 시절 아내는 KBS 어린이 합창단원이었다.

여기서 연습을 했고

숱한 날들, 그 곳에 이르는 계단을 오르내렸다.

계단 하나 하나에

아내의 추억이 서려 있다.


정작 그 시절 어린이였던 나는

어린이 회관에 간 적이 없다.




백범 광장에 있는 동상들.


이시영 선생,

백범,

안중근.


언젠가 '백범일지'를 읽었을 때의 감동이 되살아 났다.

조선의 독립이 이루어진다면

자신은 청소부가 되어도 좋다고 하던 백범.


그런 정치인이 있나?





지난 가을 아내와 우리 아이들 3/5가 한국을 방문했다.

두 아이가 칠성 사이다를 좋아했다.

그 기억을 되 살리며----




제법 높은 곳에 오르니 서울시의 조망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쯤 되면 사랑도 공해다.




봉화가 오르던 봉수대


연기나 불이 오르면

사람들은 얼마나 불안했을까?


호기심으로 보긴 했지만

이 곳에 담겨 있는 백성들의 애환은 측량할 방법이 없다.

더 이상 연기나 불이 오르지 않는 것처럼

기억도 다 소멸된 것은 아닌지----




미군들이 아침 훈련으로 남산에 올랐다.

다 내 아들처럼 생각되었다.




남산에는 제법 까치가 많다.

한 동안 보이지 않던 해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 때문인가?


반가운 손님을 맞으며 까치가 울었다.





편의점에서 바나나 우유와 딸기 우유를 사서 마셨다.

딱히 목이 마른 것도 아닌데

아내는 이런 걸 사서 마시며

이야기를 만들고,

추억을 생산한다.




부러진 나무 기둥에

해를 얹었다.

해가 얼굴이 되고 나무 가지는 두 팔이 되어

만세를 부른다.


우리를 위한 축복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




우리가 오르던 반대 방향으로 내려 왔다.

마을이 아름다웠다.

옹기종기,

다닥다닥.


보이지는 않아도 집 안의 분주함이 느껴졌다.

학교로, 일처로 떠나는 준비에 바쁠 사람들의 그 분주함이.



나무 계단의 구성





"계절이 이 쯤 왔으면

개나리라도 좀 얼굴을 내 밀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아내가 불평을 하는 순간 

노란 꽃이 아내 눈에 물을 들였다.



사잇길로 내려 오다 보니

멋들어진 소나무들이 꼿꼿한 허리로,

아니면 등이 휜 자태로 우릴 맞았다.




버스를 타고 남대문 시장에서 내려

아주 가볍게 아침을 먹었다.

어묵.

한 꼬치에 10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