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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빈 말

빈 말





"여보 내 폼 어때요?"


-묵묵부답-


우리는 시차 때문에 일찍 눈을 뜨고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자 

호텔 아래 쪽에 있는 골프장으로 산책을 나섰다.

티샷하는 곳을 발견하고 아내가 골프 스윙을 흉내를 내며 

나의 반응을 유도하며 한 말이었다. 


나와 아내는 몇 번 골프를 친 적은 있었지만

골프채를 손에서 놓은 지 10 년이 넘었다.

골프와는 인연이 없는데다가 그냥 얼치기로 몇 번 필드에 나간 게 

내 골프 역사의 전부였다.

누구의 스윙 폼이 어쩌구 저쩌구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그럴 능력이 1 도 없는 나에게는 

너무 가옥한 질문이어서 그냥 입을 닫고 있었다.


물론 아내는 장난스레 나에게 친근감을 표시하려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중한 성격인데다가

나중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그냥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의 반응이 나왔다.


"아니 빈 말이라도 멋있다고 해주면 안 돼요?"


"아니 이 걸 멋 있다고 하면 나는 평생 빈 말만 하고 살란 말이야?"


아내는 폭소를 터뜨렸다.

내 유머 코드를 알고 있는 아내이니

그런 반응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연애를 하는 중에 이런 질문이 나왔으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내가 말 한 빈 말은 그냥 자신의 기분을 맞춰 달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나는 평소에 립 서비를 잘 하는 편이다.

아내의 음식 솜씨며 미모에 대한 과장된 표현을 

스스럼 하기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오글거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

성당에 가서 미사 중, 평화의 인사 때

포옹을 하고 이마에 입술을 대면서 

아내에 대한 나의 굳건한 사랑과 충성을 맹세한다.


그리고 그 마음은 사실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내와 포옹을 하고 입을 맞추며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삶의 현장에서 얼마나 아내의 마음을 알아주고

아내를 위한 실질적인 서비스를 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사랑하는 마음이 사실이라고 해서

사랑의 행돋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빈 말이 아닐까?


빈 말이 될까 두려워 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빈 말이라도 하고

실제로 사랑의 행동을 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


오늘 아침 다시 호텔을 나와

골프장까지 산책을 할 기회가 있다면

나는 아내에게 다시 골프 채 없이 스윙을  한번 해 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나이스 샷!"이라고 외치며

폼이 정말 멋지다고 빈 말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빈 말이 빈 말이 되지 않도록

살아가며 아내를 마음만이 아니라

봉사와 실처적인 행동으로 사람할 것을 마음 속으로 맹세할 것이다.


(그런데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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