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으로 본 이탈리아 - 나폴리 4
택시 기사가 우리를 내려준 곳은
낭만이나 근사함과는 아주 거리가 먼 바닷가였다.
바닷가에 이층 짜리 건물이
보수의 흔적 없이 세월 속에 방치 되어 있었고
그 건물 옆에는
배를 댈 수 있는 시설이 있었는데
두셋이 탈 수 있는 작은 보트 서너 척이
파도에 이리저리 몸을 맡긴 채로
모든 걸 체념이라도 한 것처럼 무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눈을 오른 쪽으로 돌려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크루즈 보트가 정박해 있었다.
선착장이었다.
그런데 바닷가 쪽으로 좀 근사한 식당을 찾으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낭만이나 분위기 같은 초라도 치는 듯이
황량한 풍경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갱 영화의 배경으로 알맞을
그런 풍경만이 우리 눈을 채울 뿐이었다.
어쩌겠는가,
잠시 바닷 내음을 맡고는
우리는 오는 도중 택시 기사가 알려 준
바로 '피'에 액센트가 강하게 내려 앉는
식당 '쏘피아'로 하릴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일요일이어서인지
식당 안은 한산했다.
손님은 우리 뿐이었다.
주방에 한 사람이 요리를 했고
한 사람이 Serve를 했다.
음식은 동네 분위기에 비하면 괜찮았다.
맛 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건
께름찍했던 기분을 날려버리는 효과도 있었다.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 까닭에
나폴리가 피자와 파스타의 본향이라는 걸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야 알았다.
난 스테이크를 먹었다.
전주에 가면 비빔밥을 먹어야 하듯,
나폴리에 가면 피자나 파스타를 먹어야 하는데
엉뚱한 것을 먹어서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여행 중 몰라서 겪어야 하는
아쉬운 것의 한 예이다.
그래도 음식은 실망스럽지 않았다.
식사 도중에 한 두 사람이 더 들어오더니
갑자기 단체 손님이 밀려 들었다.
아마도 크루즈 하는 사람들이 배에서 내렸던 모양이다.
신기하게도 언제 연락을 했는지
일하는 사람들이 보충되어
그 많은 손님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궁금했지만 꼭 알아야 할 것도 아니고 해서
그 호기심은 그냥 재워야 했다.
식사를 마치고식당을 나섰다.
마침 택시가 지나가기에
불러 세웠다.
기차역까지 가자고 하니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기사는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11유로라고 적은 것이었다.
택시요금은 타는사람에 따라
그리고 기사의 수완에 따라
그때 그때 달라지는 것이
나폴리의 법이다.
미터?
완전 폼이다.
그저 형식적으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탈리아 식'
삶의 방식에 조금씩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우리를 바닷가에 내려 놓고 휑하니
사라진 택시 기사가 생각 났다.
우리를 그 곳까지 데려다 준 기사는
이 기사 할아버지보다
요금을 거의 두 배를 받았는데
그리 밉거나 화가 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손님을 위해 라이브 노래까지 불러 주었던
정성(?)이 깃든 태도를 보면
9유로의 팁의 가치는 충분했다고 자위하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기차 역에 도착하니 주위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로마로 향하는 기차를 타려 했는데
기차의 모양이며 색깔이
타고 온 기차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언가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세계로 돌아가는 기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푸른 색과 베이지 색이 섞여 있는 기차의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무엇보다도 기차의 유리창 거의 전부가
내려져 있었다.
여기서 거의 전부라고 한 것은
어떤 창문은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없는
고장난 것들도 몇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추리력은 직감적으로
에어컨이 없는 기차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 불길한 결론은 정확하게 들어 맞았다.
웬떡이 비지떡이 되는 순간을 맞은 것이었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은
이 머나먼 이탈리아의 남쪽 지방 나폴리에서도 유효했다.
더위는 열린 창문을 넘나 들며
끈적끈적한 우리 몸을 비닐처럼 감으며
피곤에 지친 우리 곁을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우리 앞에 앉은 남자는
검은 가방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입은 옷이며 차림새가 추레해 보이는 것이
삶의 고단함이 그 모습에서
풀풀 배어나와 공연히 내 연민을 자극했다.
아마도 그 남자는 나폴리 출신으로
고향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니
주중엔 로마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는 고향 집에서 머무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일요일 밤 기차를 타고
한 주일의 힘 겨운 노동을 하러
로마로 가는 것이라고 머릿 속으로 상상을 했다.
그 남자는 자리에 가방만 둔 채로
얼마간 자리를 떴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는데
아마 검표원의 검표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
검표원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무임승차를 하건 말건
철도 당국의 관심마저 없는,
그런 기차,
그런 사람들이
그 기차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지금도 그 남자는 내 기억 속에 나타나
나를 아프게 한다.
그 남자는 기차가 거의 로마에 도착할 때 쯤 해서
가방에서 샌드위치를 꺼내어 늦은 저녁을
꾸역 꾸역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난 거의 울 음이 터질 뻔 했다.
먹는 모습마저 슬퍼지는 밤 삼등 열차의 풍경.
(그 남자의 처지가 실제로는 그리 슬프지 않기를,
그렇게 슬프게 보인 것은
오로지 내 상상의 결과였기만을 바랄 뿐이다.)
로마로 돌아오던 중간 쯤 어디에선가 남자는
가방만 뎅그러니 남아 있던 자기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 남자는 내 손에 카메라가 들려 있는 것을 보고는
곧 사진 찍을 곳이 나타날 것이라고
몸짓을 섞어가며 알아듣지도 못 하는
이탈리아어로 일러주었다.
검은 밤, 그것도 달리는 기차 안에서
야경을 찍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를 가지 않아
멀리서 불빛이 제법 찬란한 마을의모습이
멀리 나타났다.
밤 기차를 한 두번 타고 다닌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사진이 되질 않는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나는 열린 창문 밖으로
카메라 든 손을 내밀고
카메라 셔터를 정성 들여 눌러 댔다.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그 남자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가
셔터를 누르는 일 뿐인 것이 슬펐다.
<그는 모르는 이방인에게 무언가 좋은 일을 했다는 마음으로 행복했을까?>
그렇게 하루의 더위와 피로,
그리고 살아가는 일의 슬픔은 실은 완행 열차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우리를 로마에 내려 놓았다.
비지떡 같았던 당일치기 나폴리 여행은
일단 거기서 끝이 났지만
그날 여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로마역에서 내려 우리가 탔던 기차 앞에서 찰칵.
언제 이런 기차를 다시 타 볼 날이 있을런지----
택시 기사가 우릴 데려다 준 곳.
나폴리가 세계 3대 아름다운 항구라고 하는데
우리가 갔던 곳은 세계 3대 추항이라고 해도
변명거리가 없을 정도
소피아 식당은
그런대로 괜찮았던 것 같다.
동서가 마신 diet coke 캔에는 사람 이름이 보였다.
우리 둘 째 이름이 Stella.
딸에게 보여주려고 찍었다.
역 주변의 아파트 건물들.
거리의 낙서
노점상.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 찍은 사진.
막 어둠이 몰려왔다.
로마로 오던 길,
어느 시골 역
로마역 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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