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으로 본 이탈리아 - 나폴리 (1)-
- 택시 기사가 데려다 준 나폴리의 외진 바닷가.-
우리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나와
조금 걸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열쇠의 둥근 모양을 한
베드로 광장에서 열쇠의 끝으로
뱡향을 잡고 걸었다.
우리가 걸었던 길 옆으로는 음식점이며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 섰고
한결같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런데 큰 길 건너 편 쪽으로는 가게들이 있긴 했는데
그렇게 한산할 수 없었다.
운명이f라든가 재수,
이런 것들이 있긴 있는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도
그런 판단을 할 때면 고개를 기웃거리게 된다.
아직도 운명은
순응해야하는 건지
아니면 개척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는 길 옆의 한 피자 가게에서
피자를 사서 점심으로 먹었다.
맛?
이탈리아에 갔다와서 늘 말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사는 미국의 동네 피자가 훠얼씬 맛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나니
딱히 갈 곳이 없었다.
뭘 알아야 가서 구경을 하지
아는게 없으니 갈 곳이 없었다.
우리 같이 한심한 관광객은 눈을 씼고 보아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떠랴,
우리가 수학여행을 간 것도 아니고
굳이 뭘 보고 배워야 할 것도 아니었다.
여행의 목적은 그저 단순한 일상에서의 탈출,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모든 것이었다.
갈 곳 없으면 퍼질러 앉아 쉬면 되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 때 동서가 뜬금없이
나폴리에 가자는 제안을 했다.
모두들 그러자고 했다.
교수인 동서는 한 해에 몇 차례씩
외국에 가서 강의를 하는데
시간이 나면 한 두시간 거리에 있는 곳으로
무작정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간다고 했다.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려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를 통해서
나폴리는 볼 것도 없이
아름답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넘치는 곳이어야만 했다.
나중에 나폴리에 도착한 후에 알게 된 일이기는 하지만,
노래를 통해 얻은 느낌을 신앙처럼 믿었던 내가
무척 순진한 사람이라는 게 드러났다.
저녁 시간에 나폴리에 도착하면
지는 해를 배경으로
근사한 풍경사진 몇 장은 찍을 수 있으리라는
속셈은 이미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이타리아에 와서 처음으로
나폴리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흥분이 되고 감격스럽기도 하였다.
가까운 곳에 있는 여행 안내소에서 기차 시간을 알아 보았다.
오후 세 세 가까이 되어 나폴리로 떠나는
기차를 타기로 하고 우리는
급히 로마의 테르미니 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기차표를 사려 하는데
동서의 크레딧 카드가 제 역할을 못 하는 것이었다.
카드 회사에서
카드 주인이 아닌 사람이 사용하는 것으로 판단을 한 것 같았다.
카드 회사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본인임을 증명한 뒤에야
카드는 생명을 되 찾았다.
우여곡절 끝에 기차표는 구입을 하긴 했는데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시간은 3-40분이 훌쩍 지나갔고
결과적으로 기차가 떠날 시간은 10여분 밖에 남지 않았다.
10여분이면 기차를 찾아 타기에도
그리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발생했다.
아.내.가 사.라.졌.다.
아,내가 없어진 것이 아니고
아내가 자취를 감추었다.
이 무슨 소설 같은 일이란 말인가.
산 넘어 산이란 표현은 이럴 때를 두고 한 말이었다.
이건 산을 하나 넘어 또 다른 산을 넘기도 전에
강물을 하나 더 추가해서 건너야 하는 것 같았다.
매표소 부근의 책방에 있겠다던
아내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종적을 감춘 것이었다.
황당과 당황을 합친 상황이 발생했다.
이리 찾고 저리 뒤지며
오분을 허비했다.
걱정 반 불안 반으로 아내를 찾던
우리의 눈길은
천진한 미소를 머금고 나타난 아내의 손에
들려 있던 아이스 커피 두 잔에 가서 멈추었다.
살면서 이런 경우가 어디 한 두 번이라야지,
어이가 없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던킨 도넛 가게에서도
아이스 커피는 팔지 않는다.
더위로 고생하는 모두에게 무언가 시원한 것을
마시게 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아내는 '따로 커피'를 '조제'해 온 것이었다.
커피 따로, 얼음 따로.
둘을 함쳐서 아이스 커피를
창조한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칭찬을 할 겨를도
화를 낼 여유도 없었다.
기차 티켓을 가지고 있는 동서에게 물었다.
나폴리 행 기차를 타는 플랫폼의 번호를.
13이라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전에
내 몸이 반응을 했다.
티켓 어느 귀퉁이에서 보고
13번이라고 했는지 물어볼 여유가 없었다.
뜀박질에 자신이 있는 내가
일단 뛰기 시작했다.
아직 달리는 능력은 그다지 퇴화하질 않아서
13번 플랫폼을 향하여 거의 빛의 속도로 질주했다.
일단 매달려서라도
뒤에 오는 일행을 위해
기차의 출발을 지연시키겠다는
거룩한 의도에서 였다.
앞 서 가는 자는 고독하다는 걸 느낄 여유도 없었다.
기차 가까이 가서 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나폴리 행 기차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폴리행 기차는 어디서 떠나냐고 물었더니
6번이란다.
OMG!
다리가 풀렸다.
그러나 거기서 멈출 순 없었다.
그날 나폴리를 가지 못하면
내 인생 언제 다시 나폴리를 볼 수 있을런지
기약이 없었다.
그만큼 절실했기에
다리에는 다시 힘이 솟기 시작했다.
다시 방향을 돌려 6번 플랫폼을 햔하여 돌진.
그랬더니 거기도 아니란다.
중년의 동양인 남녀 넷의 역 구내에서의
왔다리 갔다리를 유심히 지켜보았다면
정말 재미있는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심각하고 비장했다.
맥이 빠질 여유도 없었다.
다시 9번 플랫폼으로
달렸다.
삼 세 번만에 드디어 성공!!!!
어떤 칸에 타야되는지도 모른 채
일단 기차에 올랐다.
묻고 물어서 우리에게 지정된 자리에 앉으니
그제서야 긴장이 풀리며 피로감이 몰려왔다.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목구멍은 바짝 타 들어가고 있었다.
그 때 구원처럼 등장한 것이
아내가 특별히 조제한 아이스 커피였다.
미워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아내였다.
병만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약까지 준비해주는 아내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아무 말 못 하고
아이스 커피를 들이켰다.
기차는 이미 나폴리를 향하여
서서히 출발한 뒤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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