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으로 본 이탈리아 - 나폴리 3
-나폴리 역-
내가 상상하고 그리던 나폴리는
낭만이 철철 넘치고 아름다운 곳이어야 했다.
그러나 나폴리 역에 가까이 가면서
그런 기대는 스쳐 지나가는 창 밖의 풍경처럼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초라한 풍경이며,
예술성이란 전혀 보이지 않아
예술의 나라 이탈리아의 한 지방에 왔다는 느낌은
눈을 비비고 보아도 찾을 수 없는
Graffitti(낙서) 같은 것들이 어수선하게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기차가 나폴리 역에 도착한 것은
오후 여섯 시가 거의 다 되어서 였다.
아직 어두워질 기색은 없었지만
하늘엔 구름이 끼었고 날씨는 여전히 무더웠다.
한 마디로 아주 끈적끈적하게 기분이 나빴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로마로 돌아가는 기차표를 예매를 해야 했다.
여덟 시 쯤 로마로 가는 기차표가 있었는데
일인 당 11유로라고 했다.
-와 싸다!-
이게 웬 떡이냐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싼 티켓을 구입한 환희는
두 시간 후에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걸 두 시간 후에
온 몸으로 체험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기차역에 무리를 지어 퍼질러 앉아 있던
한 떼의 젊은이들에게 물었다.
배낭을 메고 다니는 여행객들이어서인지
수염이며 머리가 덥수룩한 것이
마치 마적떼들 같았다.
내가 전방에서 철책선 근무를 할 때
군인들 모습이 그랬다.
특히 겨울엔 식수로 쓸 물을 구하는 게 힘이 들었다.
거의 90도가 되는(숫자에 연연하지 마시길- 군대식 과장임 )
비탈진 산길을 타고 내려가
계곡의 냇물을 길어다 먹었는데
막사까지 오면서 반은 쏟아졌으니
먹을 물도 부족할 정도이니
몸을 씼는 물을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다.
그러나 대한 민국 군대가 위대한 점이 있으니
안 되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난로 옆에 휘발유를 담는 도라무깡(드럼 통)이 있었는데
한 쪽을 잘라내고 아랫 쪽에 수도꼭지를 달아
물 탱크로 사용했다.
겨우내 부족할 것이 없는 눈을 퍼다가
드럼 통 안에 채우면
아쉬운 대로 몇 몇이
간단히 세수하고 양치할 정도의 물은 해결되었지만
말단 병사까지 돌아가기엔
턱없이 물이 부족했으니
우리 병사들의 몰골은 산채에 있는'산적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이미 나폴리를 정복하고 떠나는 선임자들에게
여기에서 가까운 곳 중 가 볼만한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우리에겐 돌아갈 기차를 타기까지
두 시간의 여유 밖에 없었다.
멋진 항구와 해변은
택시로 30분은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왕복 한 시간은 이동하는 하는데 써야 하니
밥먹고 어쩌고 하다 보면
돌아갈 기차를 타기에 너무 빠듯해서 포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낭만적이고 근사한 저녁식사는 물 건너 갔다.
해가 지는 멋진 나폴리항을
찍어보려는 꿈도 깨졌다.
그런데 꿩 대신 닭이라고
여기서 기차를 타고 10여 분 가면
두오모(주교가 있는 큰 성당)가 있는데
한 두 시간 구경하기엔 썩 괜찮은 곳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시간도 그리 많이 걸리지 않으니
그리 하기로 하고 기차표를 사려 했더니
기차는 공짜란다.
자기들이 미리 손을 써서 우리는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표정으로 웃음까지 지으며
선심 쓰는 자의 여유를 마음껏 뽐내고 있는 것 같았다.
웬떡?
공짜 떡이 둘 씩이나--------
나폴리에 축복 있으라!
로마로 돌아가는 기차표도 아주 싼 가격에
구입을 끝 낸 터에
나폴리 구경을 하는데
교통비마저 쓰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은
더운 날 아무 예고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 같았다.
그러나
나폴리에서의 판타지는
거.기.까.지----------
였다.
이리저리 헤매다 겨우 플랫폼에 다다를 수 있었다.
옆에는 아주 깔끔한 젊은 남녀가 있어서
참으로 믿음이 가는 인상을 하고 있었다.
그 마적떼 같은 젊은이들이 알려준 정보는
사실 미덥지 못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기차가공짜라는 사실은
기쁜 소식이긴 했지만
그대로 믿기엔 어딘가 찝찝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인상 깔끔한 남녀에게
다시 확인 차, 기차가 가는 행선지며 시간,
요금 같은 것들에 대해물어보았는데
기차를 타는 곳까지는 바로 왔는데
기차는 공짜가 아니란다.
헐!
아까 길을 가르쳐준 젊은이들도 여행객인지라
그런 것까지는 몰랐던 것 같다.
요행히 검표원에게 들키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머나먼 이탈리아까지 와서
그 젊은이들 창피 톡톡히 당할 뻔 했다.
그러나 그건 남 걱정이고
정작 망신스런 상황을 맞을 수도 있었던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고 우리들이었다.
어찌 되었건 그들은 이미 나폴리는 찍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중이었으니
나폴리에서의 상황은 이미 끝을 냍 상태였기 때문이다.
혹 문제가 생겨서
그 사람들 탓을 하려 해도
기차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30여 분이 흘렀다.
그러니 두오모도 물 건너 갔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가까운 해변으로 가서
져녁 식사를 하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폴리 역 밖으로 나오니
역 주변의 풍경이 우중충 한 것이
날씨 탓 만은 아니고 나폴리 자체가
그런 것 같다는 인상이 짙게 풍겼다.
역 주변엔 택시들이 줄을 서서
승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 보였다.
나폴리라는 도시의 경제 사정이 살짝 엿보이는 듯했다.
또 한 편엔 좀 노는 듯한 한 떼의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는데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는
지나가는 사람(주로 여자)들에게 뭐라고 낄낄대며
농을 건네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가자
이탈리어로 무어라고 떠들었는데
"나폴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든가,
"머무시는 시간 내내 즐거우시길 빕니다."같은
축복이나 환영의 말이 아님을
억양과 톤에서 대번 읽을 수 있었다.
택시 기사들은 밖에 나와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하고 있었는데
모르긴 몰라도
'손님들을 어떻게 더 친절하게 모실 수 있을까'라든지
나폴리 지역 경제를 위해 택시 기사로서 우리가 할 일은무엇인가?'
같은 내용은 아님이 확실했다.
그런 심오한 주제를 낄낄대며 다룰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설사 그들의 태도가 진지하지 않아도
진정으로 지역 경제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렇게 택시 핸들에서 손 놓고
무작정 여유롭게 토론을 즐길 수 있는 상황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줄의 맨 앞에 있던 택시로 가서
택시 기사와 흥정을 했다.
아니 흥정이라기 보다는
역에서 가까운 아름다운 바닷가로 가려는데,
근사한 식당이 있다면 금상첨화라는 내용의
부탁을 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키가 작고 머리가 반은 벗어진
내 나이 또래의 택시 기사는
"오 케이 , 소피아" 라고 하며
소피아의 '피'에 과도한 액센트를 주며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 꼭 맞는 곳을
알고 있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이탈리아 어로 우리 일행의 숫자를
하나, 둘, 셋, 넷 하고 셈을 하며
5X4=20 유로를 내라고 했다.
'아니 택시도 사람 숫자대로 받는가' 라는
의문이 아주 없지는 않았어도
'나폴리에 가면 나폴리의 법에 따라야 하는 것'이라는
아름답고 지혜로운 격언도 있지 아니한가?
거기다가 확신에 가득한 택시기사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이탈리어도 할 줄 모르는
우리가 토를 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람 수대로 택시요금을 받는 것은
나폴리의 법이 아니고
그 택시 기사 고유의 법임을 알게 되었다.
택시 기사는 우리가 택시에 몸을 싣자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돌아오라 소렌토로'와 '먼 싼타 루치아'같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민요 뿐 아니라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의 오페라 아리아까지
몇 곡의 첫 머리를 메들리로 불렀다.
택시 기사의 명랑하고 활기 찬 태도는
그 더운 날씨에 거기까지 가느라
몸과 마음이 시든 채소처럼 축 늘어진 우리에게
다시 생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이탈리아 음악만 듣게 해서는 예의가 아니니
미국의 팝을 들려주고는 싶지만
직접 부르지는 못 하겠으니
FM 방송으로라도 향수를 달래라고
방송 주파수를 맞추느라 무던 애를 썼다.
그렇게까지 승객을 위하는 택시 기사야 말로
진정한 나폴리의 시민이며
이탈리아를 위하는
소리도 없고,
얼굴도 없는
진정한 애국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빠져
택시비가 좀 과다하다는 불경스런 생각은
고양이 터럭지 만큼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혼을 놓고 있는 사이
7-8분이 지났을까
택시 기사는 우리를 바닷가에 내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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