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으로 본 이탈리아 - 로마의 밤
나폴리를 출발한 기차가 로마에 도착하기 얼마 전
아내가 긴급 제안을 했다.
로마의 밤 관광을 하자는 거였다.
더위와 피로로 시달릴대로 시달린 나는
그냥 호텔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냉방 잘 되는 방에서
꿀 같이 단 잠을 자고 싶었다.
아 그런데 어쩌랴.
아내는 제안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명령으로 받아들여지는 걸.
그리고 그것은 아내 혼자
호강하려 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내가
어찌 아내의 거룩하고 갸륵한 뜻을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피곤해도 일부러 시간을 쪼개어 낸 여행이니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에게도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더군다나 작년에 찾았던 파리에서의 해프닝이
로마의 밤 관광은 거절할 수 없는
강한 압박감으로 작용했다.
파리에 갔을 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하루 종일 걸었던 터라 피곤이 마구 밀려오며
나도 내 몸을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녁에 예정된 에펠탑 구경이고 뭐고
그냥 자야겠다고 말했더니
아내가 화가 났던 것 같다.
나를 위해 야경 사진 찍으라고 시간을 마련했는데
어쩌면 그럴 수 있느냐는 거였다.
무어든 아내가 말을 하고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자신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음이
오로지 나를 위해서
나 잘 되라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는 걸
내가 잠시 망각했었다.
나의 불경,
나의 불충이 도를 넘었음을
그날 진심으로 뉘우쳤다.
인간의 위대함 중의 하나가
지나간 시간이 주는 교훈을 알아듣고
배운다는 점이다.
아내의 숭고한 뜻을
다시 저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열한 시가 넘어 도착한 로마의 테르미니 역은
밤이 되었어도 더위가 식지 않은 상태였다.
밖으로 나와보니 숙소로 돌아가지 못한 여행객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역 주변엔 낮엔 별로 볼 수 없었던 노숙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그렇게 로마의 밤거리 방랑은 시작되었다.
웬 짐이 그리 많은 것인지.
노숙인 할머니의 짐은 수레 둘을 합친 것에 넘쳤다.
내 삶에도 지고 가야 하는 짐이 얼마나 되는 것인지-----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에스칼레이터를 탔다.
전 날 지나갔던 거리
밤에 보니 생소했다.
낮의 풍경과 밤의 풍경이 다르고
갈 때의 풍경과 돌아올 때의 풍경이 다름을
살면서 자주 경험한다.
내 시야의 편협함.
우기지 말자 -
내가 보고 내가 아는 것만이 옳다고,
그것이 다라고.
트레비 분수를 향해 가는데
어느 집인가 자매로 보이는
두 여자 아이가 잠도 안 자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그 아이들의 예쁜 눈망울을 보며
마음속으로 축복을 비는 나의 손짓을
그 아이들이 알아차렸을까?
나보나 광장에도 밤이 왔다.
식당에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띄긴 했어도
파장의 어수선함, 쓸쓸함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건물 밖에 놓인 테이블,
의자들을 그 위에 얹어 놓았다.
사람들도, 그 사람들이 앉았던 의지들에게도
휴식의 시간이 찾아왔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과.
과일을 좋아하는 동서는
트레비 분수 근처의 과일 가게에서 과일을 샀다.
단 물이 터질 듯이 든 복숭아의 향긋함이 아직도 기억난다.
과일을 씻는 처제
동서도 같이 과일을 씻고 있다.
내년 1월이면 결혼 30 주년.
서로 보듬고 살아온 그 긴 세월이
이 사진 속에
살짝 들어 있다.
아무 연출 없이 찍은 이 사진 덕에
깍두기로 따라간 나도 조금 면이 선 듯.
트레비 분수의 밤 경치
밤에도 트레비 분수엔 사람들이
분수처럼 차고 넘쳤다.
거리엔 초상화를 그려주는
거리의 화가도 있었다.
판테논 신전 부근
트레비 분수와 판테논 신전,
그리고 나보나 광장을 휘이 둘러 나와
택시를 탔다.
우리가 이탈리아에 도착해서
벌써 다섯 번 정도 택시를 탔음에도
택시에 장착된 미터기를 작동시키는
택시기사는 그 사람이 처음이었다.
우리 호텔은 로마의 외곽에 있어서
30여분을 가야 했다.
택시 기사는 키가 훤칠한 사람이었는데
성실남의 표본이었다.
그는 낮에 만났던 나폴리의 택시기사와는 달랐다.
아무리 밤이었어도 꼬박꼬박 신호를 준수했다.
자신이 부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도
규칙을 잘 지키며 안전 운행을 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로마에 관한 지식이 해박했다.
특별히 고등고육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어도
손님에게 영어로 지나는 곳에 대해
소상한 설명을 해 주었다.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정성스럽게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택시 기사의 설명으로
로마에 조금 눈이 뜨인 것 같았다.
그런데 전 날 길을 잃고 헤매며 걷던
한적한 길을 지날 때였다.
차가 지나가자 인도의 가로등 옆에서
갑자기 하얀 망토 같은 것을 입은 유령 같은 것이 나타났다.
지치고 졸린 눈에 혹시 환영을 본 것이 아닐까 했다.
그런데 같은 장면이 또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택시 기사에게 로마에 유령이 있느냐고 물었다.
방금 무언가를 본 것 같았는데
유령이 아니냐고.
택시 기사에 의하면
그들은 유령이 아니라 Prostitute ( 창녀 )였다.
알 몸에 흰 망토 같은 걸 두르고 있다가
차가 지나가면 망토를 벌리고
자신의 알몸을 보여주며 유혹을 하는 것이었다.
다시 나타나면 주의 깊게 보려 했으나
그러는 사이에
그 길이 끝나며 그 광경은
더 이상 나타나질 않았다.
영어의 Prostitute는
Pro라는 말과 Stitute라는 말의 합성어.
앞에 서 있다는 뜻.
집 앞, 혹은 길 앞에까지 나와 서서
그 여자들이 찾는 것은,
혹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밤에 홀로 서 있는 여인들에게서는
아찔함보다도
아릿함이 느껴졌다.
살아가는 일이
아파지고 슬퍼짐을 맛본 로마의 밤.
로마에도 밤에 잠 못 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혼자 깨어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칠 때
견딜 수 없는 깊은 고독 속으로 빠져든다.
전방에서 군대 생활을 할 때 그랬다.
혼자 깨어 있어 자신과 만날 때,
시간이
살아 있는 존재에게 부여하는
아픔- 그걸 고독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그런 아픔들이 로마의 밤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서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잔 돈을 거슬러 받지 않았다.
낮에 만난 나폴리의 택시 기사와는 다르게
내 마음속으로는 얼마를 더 주고 싶었지만
내 주머니는 처음부터 텅 비었기에 그러질 못했다.
혼자 깨어 돈을 벌어야 하는
그 택시 기사의 고독한 밤에
몇 푼으로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이런 나의 마음이 전달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길었던 로마에서의 둘쨋 날도
어둠 속에 묻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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