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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내 눈으로 본 이탈리아

내 눈으로 본 이탈리아 - 나폴리 (2)-

 

내 눈으로 본 이탈리아 - 나폴리(2) -

 

 

우리가 탄 기차는 자리에 안기가 무섭게 출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여곡절 끝에  겨우 출발 시간이

다 되어서야 기차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기관차는 유선형으로 날씬하고 아주 날렵해 보였는데

짙은 빨간 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기차마다 다른 색의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데

색깔별로 등급이 나뉘는 것 같았다.

우리가 탄  빨간 기차는 그런대로 좋았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떤 젊은이들은 테이블까지 와 있는 인터넷 선에

콤퓨터를 연결해 사용하는 것이 보였다.

같은 객차라도  기관차가 있는 앞 쪽과

꼬리 쪽의 객차 사이에도 

차등이 있는 것 같았는데 확인은 하지 못했다.

 

 

 통로를 중심으로 한 편에 두 좌석이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었다.

아내가 창 가에 앉았고 나는 통로 쪽에 앉았다.

아내 앞에는 살이라고는 별로 붙어 있지 않은

아가씨가 무엇이 불편한지

연신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었고,

내 앞에는 중년의 전형적인 이탈리아 아주머니가

호기심 많은 표정으로 우릴 번갈아 보며 관찰하고 있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우리 네 사람은 한국과 이탈리아 사이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 같았다.

 

탐색전이 시작되었다.

키가 작고 뚱뚱한 이탈리아 아주머니는

전혀 영어를 하지 못하는 까닭으로

무언가 말을 걸고 참견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으니

여간 답답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무언가 우릴 도와주고 싶어하는 표정이 보였다.

나중에 말라깽이 아가씨와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이해하지 못 하는 이탈리어 말로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었다.

 

그런데 말라깽이 아가씨는

땀에 쩔을 대로 쩐 채로 우왕좌왕하며

자리에 앉는 우리를 보는 순간부터

 영 못 마땅하다는표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었다.

그러나 어쩌랴,

당장은 그 아가씨의 불편한 심기를 누그러뜨리기에는

우리의 더위를 머저 식히는 게 먼저였다.

우리가 탈 기차를 찾느라

섭씨 40여도에 이르는 더위에 휩싸인 채

이리뛰고 저리 뛰는 사이

우리 몸에서는 수분이 다 증발해서 

그야말로 소금 밭이 되기 바로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

그제서야 문제의 아이스 커피 생각이 났고

아이스 커피는 구원의 음료가 되었다.

이 모든 혼돈의 원인이 되었던 아이스 커피에 대한 원망은

더위 탓인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오직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만으로 경건하게 아이스 커피를 마셨다.

 

통로에는 아직도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오가고

 때때로 음료수와 간단한 스낵을 실은 카트를 밀고 다니며

파는 사람도 등장했는데

어릴 적 한국에서 기차를 타면 어김 없이 등장해서

"사이다나 콜라 있어요,

심심풀이 땅콩, 울릉도 오징어가 있어요."라고

영혼 없는 목소리로 외치던

홍익회 판매원의 톤과 얼마나 흡사하던지

그 시절 그 사람의 빙의가 아닌가 하고 깜짝 놀랐다.

 

실내의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다고 느낄 무렵 쯤,

기차는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잠시 육체를 떠났던 정신도 제 자리를 찾았으니

슬슬 작업을 걸 때가 된 것 같았다.

 

말라깽이 아가씨에게 말을 걸었다.

작업의 정석 첫번 째는

상배방에 대한 칭찬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영어 속담에

'Flattery will get you everywhere"란 말이 있다.

'칭찬(약간 아부라는 뉘앙스가 들어 있음) 하면

만사형통'이라고 해석하면 될지 모르겠다.

 

 

불쾌한 인상을 쓰는 아가씨에게

뭐 그리 칭찬할 만한 것을 찾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상황에 맞지 않거나

지나친 과장을 하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이탈리아의 자랑거리에 대한 칭찬을 늘어 놓았다.

 

몇 편 보지 않았지만

'자전거 도둑', Life is beautiful', 'Cinema Paradiso' 같은

영화를 언급하며 이탈리아 영화에서 보여지는

 휴머니즘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엔니오 모리코네 같은 위대한 영화 음악가에 대한

언급도 빼 놓지 않았다.

사실 작업을 위한 멘트이기 하지만

내가 이탈리아 영화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올리브와 해바라기, 포도주, 그리고 소세지와 같은

농산물과 먹거리에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산 올리브가 맛이 기가 막힌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여행 중 한 번이라도 올리브 나무를 볼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 같으니

혹시 올리브 나무가 보이면

알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작업의 정석 의 두번 째는 상대방의 우월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 우월감은 약한 이에게 베푸는 동정심이나

봉사 하려는 마음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 아가씨는 올리브 나무를 본 적이 있을 것이고

그걸 가르쳐 주는데 시간이나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마다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남에게 무언가를 해줄 때

행복감을 느낀다.

그런 희생과 봉사의 정신은 

신께서 우리 인간의 심성 가운데

심어 놓으신 보물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신의 한 수다.

 

가끔씩 내가 일 하는 세탁소 안에 들어와

길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길을 가르쳐 주고 난 후의 뿌듯함이란----

 그 작은 일로 다른 사람이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될 때

참 기쁘고 보람이 있다.

 

아가씨 입에서 술술 이야기가

풀려 나왔다.

로마에서 자기 집으로 잠시 다니러 가는 길이며

자기 마을은 아주 작고 볼 품 없는 곳이고

로마가 좋다는 등등,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더듬거리는 영어로 했다.

 

이해라는 것은 그런 것 같다.

말 그대로' Under Stand'이다.

상대보다 낮은 곳에 서서

상대를 우러러보며 대할 때 소통이 되는 것이다.

 

저 높은 하늘에서 지상으로,

신의 신분에서 인간의 신분으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누구보다 낮은 곳에서

이웃을 우러른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늘 한다.

(생각만 하고 행동은 늘 생각에 뒤 처진다.)

그래서 늘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에게서 배운다.

 

그렇게 창 밖으로 펼쳐지는 포도밭이며

올리브 밭, 해바라기 밭이 중간중간 널려 있는들판과

나즈막한 산들을 지났다.

 

때론 멀리 바다 도 보며 조금은 지루했던

두 시간 반 쯤을 견디어 내니

마침내 나폴리,

중학교 때인가 음악 교과서에서 배운 이탈리아 노래 

'먼 싼타 루치아' 가사에 등장했던

꿈의 장소 바로 그 나폴리를

 꿈이 아닌 현실에서 만나게 된 순간이 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폴리 역이 가까워지면서

막연히 아름다우리라고 마음 속으로 쌓아 올렸던

환상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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