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으로 본 이탈리아 - 로마 첫날 (콜롯세움 가는 길)
Foro Romano를 나오는 길에
땅에 엎드려 구걸하는 여인을 지나쳤다.
로마 곳곳에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 이런 걸인은
유적지 풍경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런 상황이면 늘 갈등한다.
그냥 지나치려면 마음이 편치 않다.
-도와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데 그 날은 가벼운 마음으로 지나칠 수 있었다.
내 주머니엔 말 그대로 한 푼도 없었으니까.
아내는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거둬 들였다.
로마엔 도둑도 많고 해서 모든 걸 자기가 잘 챙겨 가지고 다닐테니
아예 걱정일랑 붙들어 매고
그렇지 않아도 더운 날씨에 딴 데 신경 쓸 것 없이
나는 구경이나 편안히 하라는
어떻게 보면 자상한 배려심이 표면적 이유였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던가.
나도 보통 인간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기에
생각이라는 걸 하며 산다.
그러고 보면 아내는
로마의 도둑이나 소매치기를 감당하기엔
나의 민첩성이나 상황 대처 능력이 현저히 모자란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그리고 소매치기나 그런 외적인 걱정(외우)도 걱정이지만
그보다도 평소에 무엇이든 잘 흘리고 다니는 내 자신의 문제(내환)를
제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는 아내가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원인을 뿌리부터 잘랐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었다.
도난의 우려보다는 분실의 확률이 더 크다는 결론을
아내는 잠정적으로 내리고 그런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나로서는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았다.
상황이 벌어지기도 전에
'미리 그럴 것이다'라고 판단하여 나의 주권을 거두어 가는 것은
어찌 보면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었는데도
난 아무 말 하지 못했다.
-평소에 잘 하자.-
세뱃돈 받은 어린 아이의 돈을 가로채며
"엄마가 잘 보관했다가 줄께"라고 말하는
엄마는 아이의 인격을 무시한 것일까?
난 아이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적어도 아내에게는.
사진의 여인 앞을 지날 때
껄끄로와야 할 발걸음이 매끄러웠다.
나나 그여인이나 돈 없는 건 매 일반이니까.
아니, 오히려 그 여인은 컵 속에 동전 몇은 가지고 있으니
그 순간은 나보다 형편이 나았다.
주머니 속이 빈 것이 불편하긴 하지만
차 있을 때보다 더 자유로울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사는 미국에서는 흔히
'Customer is always right.'라는 말을 한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있어서 아내는
'Wife is always right.'라는 말이 성립된다.
아내는 언제나 옳은 존재인 것이다.
콜롯세움으로 가는 길 옆은
그야말로 잡상인들의 세상이다.
로마 군인의 복장을 하고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기도 하고----==
더운 날씨에 물과 과일을 파는 상인도 있고-------
과일 좋아하는 동서가
복숭아 하고 포도를 사서(돈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나누어 먹었는데 과일맛은 달디 달았다.
이탈리아의 날씨가 과일에는 잘 맞는 것 같았다.
중국 여인은 종려나무 잎처럼 생긴 풀잎으로
여치며, 메뚜기 방아깨비 같은 곤충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얼굴이 없는 투명인간 간은 이 사람은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오면
같이 사진을 찍어주고 또 얼마를 벌고-----
길 옆에서 Foro Romano를 구경하는 사람들.
체통이고 뭐고 따질 겨를이 없다.
그렇게 ------
더웠다.
핑크 드레스에 핑크 모자, 우산까지 핑크로 갖춘
이 꼬마 아가씨의 뺨도 바알갛게 익었다.
꽃, 상인, 차, 길 건너 상점의 아치형의 작은 천막까지
빨간 색이 나란히 나란히.
우산을 팔고 있는 거리의 상인
거의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에서 온 사람들로 보였다.
저 우산은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지만
이국 땅의 어려움을 가려줄
우산을 가지고 있기나 한 걸까. 저 젊은이는.
멀리 보이는 콜롯세움.
많은 인파가 길을 채우고 있다.
길 건너에도 우산 장수.
로마는 이런 우산들 든 사람들로 붐볐다.
자전거로 끄는 탈 것.
더운 날씨에도
삶의 페달을 밟는 로마의 여인.
그늘만 보이면 찾아가 쉬어야
더위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더웠다.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로마에 이겋게 많을 줄이야.
오래 된 벽.
그 뒤로 보이는 숱한 안테나.
옛 것을 통해서 보이는 현재.
그런데 저 안테나들은 무슨 신호를 수신하기 위한 것일까.
벽에 난 빈 창 같은 공간을 통해
예 사람들의 말이라도 들어보려는 것일까?
물이 담겨 있는 돌확
오렌지 나무가 그 위로 늘어져 있고
물그림자가 반사되어 벽에 무늬을 만들었다.
인상적이었는데
급히 일행을 따라가느라
제대로 찍지 못했다.
아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자유.
몰롯세움을 배경으로 저런 포즈를 취한 아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아코디온을 연주하는 엄마와
그녀의 딸.
뒤에 쫓아 가다보니 아내가 돈을 저 컵 속에 넣는 것이 보였다.
돈의 액수를 확인한 딸이 기뻐하는 모습.
나중에 아내에게 물었다.
"얼마나 주었어?"
"5 유로"
5유로 때문에 저리 행복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아내가 지금 나에게 5유로를 준다면
나도 저리 기뻐할 수 있을까?
진실로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이
콜롯세움 앞에 서 있다.
안경 뒤에 가려진 그의 눈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내일은 오늘과는 달라지리라는 희망일까,
아니면 더운 날씨에도 뜨거운 태양 아래 서서 견뎌야 하는
오늘을 사는 비애같은 것일까.
머지 않아 해는 지고
콜롯세움에도 어둠이 찾아올 것이다.
집을 찾을 것이고
하룻밤의 안식을 얻을 것이다.
밤엔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하고 속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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