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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내 눈으로 본 이탈리아

내 눈으로 본 이탈리아 - 로마 첫날 (3)

 

내 눈으로 본 이탈리아 - 로마 첫날 (3)

 

우리가 로마에서 첫 발을 내 디딘 곳이 어딘지 잘 모르겠다.

로마에서 제일 오랜 된 신전이라고 얼핏 들은 것 같은데 확실한 건 아니다.

 

어차피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왔는데

뭘 더 알아야 하고 더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로마 시내 투어 버스가 연신 와서 잠깐 씩 섰다 가는 걸 보면

유명한 곳이긴 한데 나야 알 도리가 없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나에게 친절한 관광 안내를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손가락은 달을 보라고 달을 가리키는데

나는 달은 커녕 손가락도 보질 못했다.

아니 애초부터 달을 볼 생각도 아니 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2.000년 넘게 번성했던, 그리고 한 때는 세계의 중심이라고 불렸던 도시를

단 이틀에, 그것도 아무 사전 지식도 없이 와서

알고 가겠다는 것 자체부터가 무모하고도 오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내 눈길이 가는대로

달은 커녕,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도 아닌

달의 변두리만 보고 왔다.

그래서 제목도 '내 눈으로 본 이탈리아' 라고 한 것이다.

남의 글을 읽다 보면

잘못된 지식을 옮겨서는 그걸 변형 내지는 확대 재생산한 것들이 눈에 많이 띈다.

내 눈, 내가 느낀 것은 조금은 보호장비를 갖춘 셈이다.

남의 눈과 가슴이 내 눈 내 느낌을 대신할 수도, 베낄 수도 없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로마라는 수박이 있다면 수박 맛은 커녕,

수박 껍데기를 핥은 것도 아니고

그저 수박 껍데기를 씻은 물 몇 방울 정도 맛 본 사람의

영양가 하나 없는 이야기를 듣는 셈치면 될 것이다.

 

 

 

 

그럼 로마 병정처럼 씩씩하게 로마를 향하여 출발!!!!!!

 

하려는데

날이 너무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배도 고프다.

모르긴 몰라도 섭씨 40도는 되는 것 같다.

오딧세이를 시작하기도 전에 몸과 마음의 나사가 풀리고

더운 날의 엿가락처럼 질질 늘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땀 때문에 끈적끈적한 것이

영락 없는 엿가락 신세였다.

 

-투구에 갑옷까지 걸쳤던 로마병정들은

이처럼 더운 날씨에도 씩씩할 수 있었을까?-

불쌍한 로마 병정들.

 

그늘에 퍼질러 앉아 이동 매점에서 사온 파니니와 물로

갈증과 허기를 일단 잠 재웠다.

그런데 바로 옆에 종탑이 높은 아담한(?) 성당이 눈에 들어왔고

성당 앞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애시당초 줄 서서 어디 들어가는 건 하지 말자고 했지만

궁금한 건 어찌할 수 없었다..

Santa Maria 무슨 성당 (정확하게는 Basilica)는 표지가 보였는데

나나 사람들의 눈엔 성당이 아니라 성당 입구 옆에 있는

'진실의 입'만 보이는 것 같았다.

가톨릭 신자인 내가 이럴진대

일반 사람들은 오죽하랴.

성당이 성스러움은 사라지고 세속의 찌꺼기만 그득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진흙은 묻지 않고 맑고 청초하게 피어난다.

우리 교회도 세속에 있지만 성스러움만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실의 입'

 

거짓말 한 사람이 저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진실의 입.

로마 시대 하수도 맨홀 뚜껑이라는 설도 있는데 내가 보질 않아서 모르겠다.

영화 '로마의 휴일' 에서 그레고리 펙이 오드리 헵번과 함께 와서

손을 넣었다가 빼면서 손이 잘린 것처럼 하는 바람에 오드리 헵번이 놀라며

호들갑을 떠는 장면 때문에 유명 장소가 되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손을 집어 넣었어도

손이 잘렸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거짓말에서 자유로운가?

만약 정말로 거짓말 때문에 손이 잘린다면

내 손이 수 천개라도 당해내질 못할 것 같았다.

 

진실의 입은 두려운 입이다.

나 자신을 들여다 보개 하기 때문이다.

 

진실의 입을 보는 순간 내 손이

나도 모르게 안으로 오그라드는 건 왜였을까?

 

 

 

지도 보고 열심히 공부하는 아내와 처제에게

모든 걸 의존해서 따라다니면 되었다.

시험지 받아 놓고 시험 공부 시작하는 격이었다.

우리 중 아내가 제일 해박(?)했다. 

미리 인터넷 검색도 하고 남의 여행기도 참조해서

대략적인 아이디어는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출발했다.

 

 

 

골목길을 가는데 출입구는 잠긴 채 이런 구조물이 보였다.

 

뭐지?

 

모르니 궁금하고 답답했다.

잠긴 출입구 밖에서 기웃기웃하다가

그냥 또 걸음을 옮겼다.

 

 

 

어느 집 창틀에 놓여 있는 빈 맥주병.

내가 즐겨 마시는 코로나였다.

빈 병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그 맥주 마신 사람들과는 금새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은 맥주를 마신다는 그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도------

 

 

 

담쟁이 덩쿨에 덮인 아파트 건물.

돈만으로 치장할 수 없는

시간과 자연이 합작해서 만든 운치.

 

 

 

토요일 오후의 골목길은 한산했다.

아내는 '자전거 도둑'을 흉내 내었다.

슬프게 아름다운 영화 '자전거 도둑'

아내는 자전거를 훔치지 못했다.

그 영화 때문인지 골목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 부부가 자전거 한 대 훔쳐볼까 궁리하는 동안

동서와 처제는 다시 퍼질러 앉아 또 다시 지도 연구.

지도에 구멍날 것 같았다.

 

 

 

몇 걸음 더 가 보니 창살 사이로 예사롭지 않은 풍경이 나타났다.

무너진  돌들이며 마구 자란 풀꽃들 때문에

눈이 어지러웠다.

아, 드디어 무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입구 근처의 건축물 한 부분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사다리 모양의 나무가  무너지는 건축물을

머리로 인 채,온 몸으로 힘겹게 받치고 있다.

아주 조용한 긴장감.

무너지는 것과 막으려는 것 사이의 짜릿한 긴장감.

언제고 힘의 균형이 무너질 때가 올 것이다.

 

나를 지탱하는 육신도 언젠가 균형이 무너지며

무너져 내릴 때가 오겠지.

저 나무 사다리 모양의 지지대를 보며

온 힘을 다 해 나를 지탱해주는

내 육신이 슬퍼졌다.

 

 

 

언덕을 오르다 보니 성당 하나가 보였다.

지붕엔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누구나의 마음 속에는 성소가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의 성소에도

잡초가 자라고 있는 건 아닌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많은 성당을 지나쳤다.

화려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성당보다

이렇게 낡고 초라한 성당이 더 종교적이고 성스러운 느낌을 갖게 했다.

 

 

 

동서가 한 장 박아주었다.

소위 인증 샷.

아직 본격적인 투어를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날도 더운데다가

내 말도 너무 길어져서 잠시 쉬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