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이탈리아 - 로마, 첫날(1)
로마의 입국절차는 간단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처럼 긴 줄을 서서
출입국 절차를 밟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략되어서인지
모르는 이국 땅에서의 첫 신고식은 힘들이지 않고 치룬 셈이 되었다.
여권 보고 내 얼굴 보고 도장 꽝,
그것이 신고식의 전부였다.
공항을 나서서 택시를 탔다.
조카가 쉐라톤에서 일을 하는 관계로
숙소를 쉐라톤으로 그것도 아주 싼 가격으로 예약을 해 주어서 성수기임에도
머리 둘 곳을 찾야야 하는 골칫거리 하나를 해결해주었다.
동서가 택시 기사에게 쉐라톤 호텔로 가자고 행선지를 일러주었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이 운전기사는 알았다는 표정으로 출발했다.
택시의 알림판에 섭씨 34도라는 숫자가 보였다.
오전 아홉시에 벌써 온도가 저렇다면 오후 한창 때면
도대체 어디까지 온도가 올라갈까. 더럭 겁이 났다.
더우면 정신이고 육신이고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나.
아닌게 아니라 우리는 더운 날씨로 로마의 매운 맛을 보아야 했다.
우리를 태운 운전기사는 시속 160에서 180Km의 속도로 차를 몰았다.
마일로 계산하면 시속 100마일이 넘었다.
내가 미국에 와서 가장 빨리 차를 달렸어도 시속 90마일을 넘은 적이 없으니
우리는 소위 총알 택시를 탄 셈이었다.
"서울의 총알 탹시와 로마의 총알 택시 중 어느게 더 빠를까?"
하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우린 손에 땀을 쥐었는지, 땀에 손을 쥐었는지 모를 정도로
얼어붙었다.
워낙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니 앞서 가던 차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간혹 둔한 운전자가 있어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게속 제 갈 길을 가기라도 할라치면
전 속력으로 달려 한 10Cm 정도의 간격까지 좁혀서
겁을 주어 옆길로 비키게 했다.
그리고 팔을 치켜들며 무어라고 중얼거렸는데
그것이 앞 차 운전자에게 경의를 표하거나
축복의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님을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나로서도 쉽게 눈치 챌수 있었다.
창 밖엔 붉고 흰 유도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데도
제대로 구경할 여유가 없었다.
내 눈은 속도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혹시 기록이 나오려나?'
두려움이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운전 기사를 위해 기도해야만 했다.
이 분의 안전이 곧 우리의 안전이니까.
운전기사 양반에겐 무슨 확신 같은 것이 있는가 보다.
그러고 보니 택시 앞에 묵주가 걸려 있었다.
내가 한국에 있을때 버스 기사석 주위에 붙어 있던 작은 포스터처럼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내기를
긴 잠옷을 입고 무릎을 꿇은 채로 기도하는 소녀처럼
나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교우 운전기사를 위해
집에 돌아와서도 경건하게 빌고 있다.
기왕 운전하는 것 기록도 세우고(200KM/HR)
안전하고 건강한 하루 하루가 되길-------
운전기사를 통해 호된 신고식을 치루긴 했어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경험이었다.
왜냐?
내 운전 버릇( 이 경우 습관이라는 말보다는 버릇이라는 단어가 더 맞을 듯)도
그 분과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그리 다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출퇴근길 FDR같은 길에서는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거기에 적응하다 보니 앞 차와의 간격을 그리 많이 두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아내와 함꼐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아내는가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로마의 운전 기사는 그 놀라운 속도로 앞차와의 간격을
10 센티 미터 뒤까지 붙이지만
나는 그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5M 정도는 유지 하니
적어도 100 배는 안전하게 운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내성의 한계를 높일 수 있게 되었으며
나의 운전 버릇에 대해서도 훨씬 관대해질 수 있을 것이다.
빛과 그림자
삶의 두 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해야 한다.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사람들을 경험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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