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봄날, 동네 한 바퀴 돌며
1. 집 안
봄날, 햇살은 따스하고 명랑하다.
지난 주까지만 해도 밋밋하던
창 밖의 나무에 연록의 나무꽃이 피었다.
'드디어 봄이다.'라고 선언을 해도 될 것 같다.
겨우내 실내에서 간간이 꽃을 피우더니
봄 햇살을 받아
색이 더 농염해졌다.
꽃이름을 몰라서
'이 꽃, 저꽃'이라고 대충 불러서
늘 미안하다.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이름을 부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도
늘 그런 식으로 넘어간다.
턱 없이 사랑이 부족한 나.
군자란.
군자란은 이름처럼 난의 한 종류는 아니다.
수선화과의 식물이라고 한다.
우리 집에서 자란 이 군자란은
십 수 년이 되었다.
한국에서 뿌리를 가져와 심었는데
얼마나 탐스럽게 잘 자라는지 모른다.
분갈이를 해서
이웃에도 나누어 주었는데
여기서 갈라져 나간 군자란이 열은 넘을 것이다.
지금 우리 집에 있는 화분 둘도
곧 분갈이를 해야 한다고 한다.
군자란은 사랑의 전형이다.
자기 몸을 나누어 주어도
곧 자기의 원래 모습을 회복한다.
나누어도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사랑의 양.
아무나 우리집에 와서
군자란이 예쁘다고 한 마디만 하면
아내는 분갈이 한 군자란을
그에게 선뜻 건넬 것이다.
다육이들은 거실의 해 잘드는 창가에 자리해서
겨울 동안도 해를 많이 받았다.
일조량도 많이 늘어서 이제부터는
예쁜 물이 들 것이다.
2. 데크에서
나무꽃은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
이젠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꽃잎 떨어진 자리엔
푸른 잎이 돋는다.
불그스름 하던 나무가 녹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온통 녹색이면
계절은 여름이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바뀌고 변화 한다.
'아, 이젠 봄이다 '하고 나지막히 읖조릴 때
이미 여름이란 계절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꽃을심기 위해 사다 놓은
나무로 된 물통에
빗물이며. 눈이 녹은 물이 고였다.
꽃 하나 떨어져 작은 파문이 인다.
작은 파문
이젠 그 파문이 잘 일지 않는다.
세월 따라 무디어진 내 마음 탓이리라.
젊은 시절엔 잘도 파문이 일고
어떤 파문은
지금까지도 회석처럼
남아 있기도 하다.
데크의 테이블과 파라솔의 그림자.
떨어진 꽃.
테이블 위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파라솔 아래라고 해야 하나.
가끔씩 혼돈스러울 때가 있다.
3. 뜰에서 -우리집, 그리고 동네
잔디밭 가장자리엔
지난 주일까지 눈에 띄지 않던
보라색 꽃들이 피어나서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다.
지난 주엔 두어 송이 보이던 민들레 꽃이
중창단 노래하듯 몇 송이씩 무리를 지어 피어난 것이
한 열군데는 되는 것 같다.
아내는 칼을 들고 나와
민들레의 뿌리를 뽑기 시작했다.
마치 그냥 두면 지뢰처럼
위험한 존재가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싸그리 뽑았다.
민들레를 사랑하기는 영 글러버린 것인가?
그렇지 않다.
다음 주면 어느 귀퉁이에서 또
노란 얼굴을 삐죽이 내밀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도.
민들레의 영토는
꼭 공간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민들레의 영토는
시간까지도 포함 해서 하는 말이다.
현관 앞에 아내가 사다 심은 꽃.
그 빨간 유혹 앞에
흐물흐물해졌다.
나이가 들면서
색이 던지는 유혹에 점점 약해진다.
보라색과 핑크색이 히야신스.
향기도 보랴색,핑크색으로 날까?
우리 타운의 상징수에
초록꽃이 피었다.
이십년 째 이 곳에 살고 있지만
나무 이름을 모른다.
키가 자라
한 층을 더 올린 우리 집 지붕에
등을 맞대고 키재기를 할 지경이다.
수선화는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마음에
하얗게 물이 든다.
눈을 떼고 그 자리를 뜰라치면
햇볕에 걸어 말린 하얀 빨래처럼
내 마음이 뽀송뽀송해진다.
가까이 다다가면
향기를 풍기는 이 꽃.
가까이 다가가면
향기가 나는
사람.
좀 이르다 싶은데도
열심히 작업(?) 중인 벌 한 마리.
정말로 성스러운 작업이다.
새로운 꽃을 피게 하는 -----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때론 좀 심하게다 싶을 정도로 부는 봄바람이
나무에게는 참 좋은 거란다.
겨우내 마른 가지에 물이 오르고
양분이 흐르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삶에 있어서도
이런 바람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집 벚꽃에도 망울이 졋다.
우리집 꽃은 다른 집보다 늦다.
이유를 모르겠다.
한비야의 글에서처럼
늦가을 서리에 피는 국화라 해서
꽃이 아니라 말할 수 없고
그 아름다움이
봄이나 여름에 피는 꽃에
뒤진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긴 시간 숙성된
국화의 향기가 더 그윽하지 않은가.
좀 늦는다 해서
우리집 벚꽃의 미모가
다른 집의 그것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너무 늦지는 말아라,"
하고 속삭여 주었다.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도 있으니 말이다.
목련.
광고에서 보는 것처럼
Before and After의 느낌이 든다.
피기 전, 그리고 피고난 후의 목련의 모습.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겨우내 가지에 붙어 있는
목련의 눈이나,
피기 전의 망울이나,
활짝 핀 목련이나.
목련은 목련이다.
현상만 보고
본질을 보지 못하는 잘못을
얼마나 저지르고 있는지
저 목련을 보면서
다시금 깨닫는다.
벚꽃 망울.
내가 사춘기에 들면서
젖꼭지가 단단하게 멍울이 지며
아팠던 기억이 있다.
자라기 위해 살아 있는 것들이 겪어야 하는 성장통.
저 꽃망울도 지금 아플까?
3. Pond Side Park에서
개나리는 원 없이
노란색을 자랑한다.
세상의 노란 빛은 다 여기로 모아 놓은 것 같다.
버들 강아지는 갯버들이라고도 한다는데
물가에서 잘 자란다.
지난 주만 해도 단단한 껍질 같던 것이
무슨 힘을 받아서인지
익은 밤송이 벌어지듯 툭 벌어졌다.
언제 벌어졌는지
벌어질 때 툭툭 터지는 소리가
마치 폭죽을 터뜨리는 것처럼
요란했을 것 같다.
봄은 살금살금 도둑처럼 오다가도
불꽃놀이처럼
요란하고 시끄럽게 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봄은 축제의 계절이다.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숲 속의 덤불에도
생명의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어둔 숲이
불을 밝힌 것 같이
환해졌다.
마른 나뭇가지가
물 속의 흙에 박혔다.
물그림자가 이루어내는 환영.
사람 사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은 아닐런지.
허상을 보고
본질을 보았다고 착각하는 무지.
나무가 흔들리는 것인지,
아니면 물이 흔들리는 것이지,
아니면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지
날이 어둑해졌다.
나를 유혹하던 고운 빛깔도
어둠 속에 다 묻힐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이 흘리는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아무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그렇게
또 하루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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