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2월 한 달, 일요일마다 집을 보러 다녔다.
New York 주 Upstate에도 다녀 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겨두고
New Jersey주 Montclair에 다녀왔다.
Montclair는 우리 큰 딸이 살고 있는 곳이다.
아내가 부동산 광고를 인터넷을 통해 보고
한 번 가보자고 해서였다.
그런데 왜 집을 보러 다니냐고?
한 마디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의 Property Tax(부동산세)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한 해에 거의 2만 달러가 되니 솔직히 아까운 생각이 든다.
Property Tax 중 70-80%는 그 지역 학교 운영비로 쓰인다.
우리 아이 다섯 모두 고등학교까지 잘 마쳤으니
그동안은 아이들 교육비 내는 셈 치면 되었는데
아이들이 학교를 다 졸업하고 난 지금도
2만 달러를 세금으로 내는 건 아무래도
속이 쓰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세금을 조금만 내어도 되는 곳을 물색한다는
명분으로 이곳저곳 다녔는데,
솔직히 바람 쐬러 다닌 것 이상의 성과를 올리진 못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보다
나은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Montclair 언덕에 있는 집.
날이 따뜻해서 벚꽃이 피었다.
150만 달러 쯤 하는 집인데 세금은
거의 5만 달러에 달한다.
그래서 포기.
산 꼭대기로 올라가면서 집이 점점 더 커진다.
당연히 세금도 산처럼 높아질 것이다.
그래서 그냥 산 꼭대기까지 집구경이나 하며 올라갔다.
멀리 맨하탄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보였다.
공기의 입자가 유난히 큰 날인지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유령의 도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agle Rock이라는 곳에
9.11 추모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World Trade Center가 잘 보이는 곳이다.
가족을 잃은 소녀상과,
소방관과 경찰, 그리고 파일러트의 헬멧과 모자의
함께 있었다.
가족을 잃은 저 소녀, 이름이 Margaret이라고 했던가.
품에 안고 있는 Teddy Bear 때문에
더 가슴이 저렸다.
자길 안아줄 사람이 더 이상은,
더 이상 이 지상엔
없는 것이다.
9.11의 재난이 있던 날.
Monclair 주민들은 맨하탄이 잘 보이는 이 곳에서
비극의 현장을 보았을 것이다.
발을 동동 구르면서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는 목숨들을 아쉬워 했을 것이다.
그런 기억과 간절한 마음들이 모여
이 곳에 이런 기념 공원을 만들었을 것이다.
기억한다는 것,
기념한다는 것.
그것이 죽음과 관련된 것일 때,
처절할 수 밖에 없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영혼들.
저물 무렵,
아직 돌아올 가족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
대리석 위엔 9.11 재해로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죽은 자들 이름 위로
흰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생야 일편 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 일편 부운멸 (死也一片浮雲滅)'
이라는 구절로 기작하는 시도 있지 않은가.
새로 생겨났다 흩어지는 구름처럼
어떻게 보면 삶은 허무한 것.
어차피 스러지고 말 인생을
어떻게 사느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순간 순간 선택 앞에 좋인 존재,
그것이 인간이다.
저 쪽에 보이는 건물,
마침 점심식사 시간이어서
혹시 식당이 아닌가 해서 그리로 발걸을을 옮겼다.
올망졸망 집들이
언덕 아래쪽으로 보인다.
Worrld Trade Center 건물의 잔해
식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산하다.
유리창 저 쪽으로 맨하탄 경치가 들어온다.
밤이면 야경이 근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유리 안의 주방에선 요리사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식사는 저녁에만 서브한다고 해서
아쉽게 발걸을을 돌렸다.
그래도 아내에게 근사한 식당에서
한 턱 쏜다고 했기에
생색은 제대로 낸 셈이니
그만하면 괜찮은 것 아닌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100.00 Gift Card 두 장을 샀다.
첫째 딸 부부와
둘째 딸과 그녀의 약혼자를 위한 것이었다.
아내 뒤에 보이는 곳이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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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clair를 마지막으로
집 보러 다니는 일은 잠시 중지하기로 했다.
사실 세금 빼고는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곳이
현재 살고 있는 우리 동네, Harrington Park이다.
어디 멀리 집을 떠날 때에도
집문을 잠근 적이 없다.
사실 현관문 열쇠가 어디 있기는 있을 터인데
아무도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차을 차고에 넣지 않고
드라이브 웨이에 세울 때도
차의 시동만 끄고
키는 그냥 꽂아둔다.
그러니 차에서 내려 집에 들어갈 때까지
아무도 방해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부르클린의 아파트는 어떠한가,
먼저 바깥 문이 둘인데
열쇠 꾸러미에서 비슷비슷한 것들 중에서
골라 자물쇠 구멍에 맞추는 일이
노안이 온 나에겐 힘이든다.
계단을 올라가서
아파트 문을 열 때는 은근히 짜증이 날 지경이다.
내가 몸 쉴 곳에 들어가는 통과의례가 너무 복잡하다
처음 우리 집을 보러갈 때 동네 어귀로 접어드는 순간의
감동을 아직도 난 잊지 못한다.
집들 뒷편으로 펼쳐진 숲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어느 광고의 문구처럼
우리집을 산 것은 아주 탁월한 순간의 선택이었다.
아이들 다섯이 다 잘 자라서 떠나고 없지만
언제고 돌아오면 편안히 쉴 수 있게
우린 이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집은 쉼터이다.
부모의 품, 그리고 집- 이 모두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보이고 느낄수 있는,
그리고 보이지는 않아도 느낄 수는 있는
쉼터이다.
당분간 우리 부부와 집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쉼터로 돌아오는 아이들의 바쁜 마음에
굳게 잠긴 자물통의에 열쇠를 꽂는 번거로움이라도
덜어주고 싶다.
돌아올 아이들이 있다는 것,
기다릴 아이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축복이다.
어느 때고 그냥 문을 밀치고 들어오면 되는,
그런 오기 쉬운 곳.
우리집은 그런 곳이다.
그러니 이제 집보러 다니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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