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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기

봄이 왔어요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춘래 불사춘. (春來不似春)

봄은 왔으나, 내 마음은 봄과 같지 않네.

 

옛 중국의 왕소군이라는 궁녀가

오랑캐 땅으로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시집을 갔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봄이 와도 자기 맘은 봄이 아니라는

고사에서 나왔다는

'춘래불사춘'이란 구절을

한자 그대로 본다면

'봄은 봄같지 않게 온다'라는 해석이 가능할 것도 같다.

 

봄은 도둑처럼 왔다.

적어도 올 봄은 그렇다.

두 주 전, 일요일도 추웠다.

축구를 하러 갔을 때 잔디가 살짝 얼어 있을 정도였다.

 

지난 주 초에도 며칠 추웠던 기억이 있다.

꽃들도 필 생각일랑 하지도 않는 것 같더니

어제 일요일엔 정말 도둑처럼 봄이 왔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축구하러 가는 길에 진달래도 맛뵈기처럼 살랑살랑 피었고,

개나리도 노란 싹이 돋았다.

수선화는 여기 저기 무리를 이루며 활짝 피었다.

운동장의 잔디는

두 주 전 일요일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푸르고 싱싱해졌다.

한 주일 동안 누군가가 몰래 색칠을 해 놓은 것 같았다.

'춘래 불사춘'

봄은 도둑처럼 언제 왔나 싶게

그렇게 우리 곁에 왔다.

 

 

 

봄이 오면  새벽에 하늘이

고운 빛으로 물들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문을 열고 집을 나오면

 붉은 햇살과 함께

갖가지 새소리가  들린다.

 

빛과 소리가

요란해지는 계절이다,  

봄이라는 계절은.

 

 

 

 

옥잠화가 고개를 내밀었다.

사슴들 극성 때문에

꽃을 볼 수 있으런지 모르겠다.

그냥 초록 잎만 있는 옥잠화와

초록잎에 하얀 마블 모양의 무늬가 있는 옥잠화도 있다.

 

 

 

이건 내가 사랑하는 금낭화 (Bleeding Heart)

 

올해도 어김없이 싹을 틔웠다.

매 해  피어나는 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싹을 보기까지는

'영영 땅에 묻힌 채,

싹을 틔우지는 않는걸까'

하는 조바심을 내곤 한다.

 

어제 주일의 복음말씀이

Doubting Thomas에 관한 내용이었다.

내가 꼭 Thomas와 같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THomas.

예수님의 상처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서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게된다.

그리고는 누구보다도

강한 믿음을 고백한다.

 

"My Lord, and My God"

 

 

 

잔디밭을 둘러보았다.

 

노란 민들레.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 중에

'민들레의 영토'가 있다.

 

민들레의 영토는 어디까지일까?

 

바람이 불어 씨가 날아가 닿는 곳,

또 그 곳에서 꽃이 피고 씨가 되어

바람에 날려가고-----

 

사랑이, 그리고 평화가 그렇게 퍼지면 좋으련만,

이 민들레 한 번 뿌리 내리면

삽시간에 잔디밭은 망가지고 만다.

민들레의 영토만큼

근심도 퍼진다.

그러니 잔디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민들레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류시화의 '민들레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글이 있다.

 


      어떤 사람이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는 흙을 가져다 붓고 자신이 좋아하는
      온갖 아름다운 씨앗들을 심었다.
      그런데 얼마 후 정원에는 그가 좋아하는 꽃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민들레가 피어났다.
      민들레는 아무리 뽑아도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와 또 피어났다.
      민들레를 없애기 위해 모든 방법을 써 봤지만
      그는 결국 성공할 수 없었다.
      노란 민들레는 다시 또다시 피어났다.
      마침내 그는 정원 가꾸기 협회에 전화를 걸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내 정원에서 민들레를 없앨 수 있을까요.
      정원 가꾸기 협회에서는 그에게
      민들레는 제거하는 몇 가지 방법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그 방법들은 이미 그가 다 시도해 본 것들이었다.
      그러자 정원 가꾸기 협회에서는
      그에게 마지막 한 가지 방법을 일러 주었다.
      그것은 이것이었다.
      '그렇다면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세요.'


          나도 민들레를 사랑하고 싶다.

           

          그래서 슬쩍 아내에게

          이 글을 들이 밀었다.

           

          결론?

          본전도 못 찾았다.

           

          정원관리를 자의 반 타의 반 내가 맡으면서

          우리집 잔디는 눈에 띄게 나빠졌다.

          잔디에 관한 지식도 없으려니와

          관리 방법이나 요령에도 영 맹탕이라

          이래저래 근심거리만 늘어난다.

          그러니 저 노란 민들레를 보고는

          반가운 마음이 들어야 할 텐데, 반갑기는 고사하고

          가슴이 쿵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민들레와의 전쟁.

           

          그런데 민들레가 다가 아니었다.

           

           

           

           

           

           

           

          이 무수한 냉이꽃과의 전쟁은 또 어찌 치루라는 말인가.

          우리집 옆 쪽의 잔디는

          냉이꽃이 이미 점령해버렸다.

           

          어쩌면 좋아?

           

          울고 싶어라.

          민들레 꽃만 아니라

          냉이꽃 사랑하는 방법도 배우고 싶은데

           

          어쩔꺼나, 어쩔꺼나.

          아내에겐 말도 꺼내지 못했다.

           

          '춘래 불사춘'

          봄은 왔어도 봄이 봄이 아니다.

          잔디밭이 있는 한,

          내 사전엔 봄은 없는 것이다.

           

          사라진 봄.

           

           

          그래도 내 사랑 벚꽃의 

          꽃송이가 곧 벌어질 것 같다.

           

          가녀린 꽃잎.

           

          난 늘 그 흰 꽃잎에 입을 맞춘다.

          그 풋풋하면서도 보드라운 감촉.

          우리집 벚꽃을

          나는 시각보다도 입술에 와 닿는

          촉감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옆 집엔 수선화도 피었다.

          우리집 수선화는

          왜 그리 늦는 것인지.

           

           

           

          앞 집엔 이런 꽃이 피었다.

          시진을 찍으려고 가까이 다가서니

          은은한 향기가 풍겼다.

          아름다움과 향기.

           

          사람도 그럴 수 있을 까.

           

           

           

          사슴들이 쌍둥쌍둥 다 베어 먹었는데

          다시 꽃이 피기 시작했다.

          '히야신스' ,

          '꽃보다 향기'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꽃이다.

           

          새벽에 출근하기 위해 문을 밀치면,

          기다렸다는듯

          모습보다는 향기로 말을 걸어오는 히야신스.

           

           

           

          이름 모르는 보라색 꽃도 피었다.

          초면인 것 같은데,

          뉘신지?

           

           

           

          작년 아주 더운 날

          이 파를 심기 위해 밭을 일구었다.

          작년엔 왜 그랬는지 먹을 만큼 자라질 못했다. 

          올 봄엔 이렇게 이른데도 파가 나왔으니

          무공해 파 맛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파말이와 초고추장 생각을 하니 

          사르르 입에 침이 고였다.

           

           

           

           

          나무꽃이 많이 벌어졌다.

          그냥 눈으로 스치던 나무꽃인데

          자세히, 그리고 찬찬히 들여다 보면

           

          "이뻐!"

           

          다음 주엔  날씨만 괜찮다면

          Tall Man Park에 다녀와야겠다.

          붉으스름한 저 나무꽃과

          연초록의 나무꽃이 만들어내는

          파스텔화 같은 풍경을 한 번 찍어보고 싶다.

           

           

          라일락나무의 꽃 송이도 맺혔다.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dead land"로 시작되는

          T.S Elliott의 황무지.

           

          가만히 있고 싶어도 어찌할 수 없다.

          라일락도 꽃을 피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잔인한 달 4월이기 때문이다.

           

           

          현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옆의 장미

           

           

           

           

           

          볕을 쬐라고 겨우내 집 안에 칩거해있던

          다육이와 다른 꽃나무들을

          집 뒤의 데크로 내 놓았다.

          봄 햇살에 꼬박꼬박 졸 것 같다.

          난간에 있는 녀석들이 졸다가 밑으로 떨어지지는 않을까 

          가슴 졸이기도 한다.

           

           

          거실 안에도

          봄볕은 나른히 스며들고-----

           

           

          그러다 보니 성당에 갈 시간,

          햇살도 좋고 바람도 좋으니

          문을 활짝 열어두고

          미사에 다녀왔다.

          아내는 어느새

          현관 문에 다육이 하나를 심어 걸어두었다.

           

          미사에 다녀와서 점심식사를 하고 일을 하다보니

          날씨가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집 근처 Pond  side Park로 향했다.

          아침에 지나다 보니 개나리가 핀 것 같았다.

          눈으로 꽃이 피었는지 보고 만져보기 위해서였다.

          Doubting Thomas처럼

          Pondside Park에도 봄이 왔는지를 보고 만지기 위해서였다.

          구름이 끼어서 많이 어두웠다.

           

           

          못 옆의 나무 그림자가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한 동안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어.지.럽.다.

           

           

          대충 둘러 보니 이 곳의 봄은 아직 먼 것 같았다.

          물가의 잔디도 아직 누렇다.

          구름이 짙게 드리워서인지

          우중충한 기분이 들었다.

           

           

           

           

          물 가 한 켠에 노란 개나리가 피었다.

          구름 때문에 색이 명랑하질 못하다.

           

           

           

           

           

           

           

           

          물가의 버들 강아지.

          친절, 자유, 포근한 사랑

          -이런 꽃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버들강아지 저 편으로

          청춘 남녀 한 쌍이 산책을 하고 있다.

          그들의 사랑도 이 계절처럼 물이 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

          버들강아지 옆에서 사랑을 속삭여 보라.

          솜처럼 부드러운 사랑을 하게 되리라.

           

           

           

           

          수양버들 가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연초록으로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수양버들가지,

          무엇 때문인지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기에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이의 눈도

          몹시도 어지럽게 만든다.

           

          너무 흔들려 어지럽고 멀미가 날 것 같은 계절,

           

           

           

          '춘래불사춘'이

          어떤 의미를 가졌건

          봄은 거역할 수 없는 큰 힘으로

          우리를 둘러 싸고 있다.

           

          내 몸이,

          내 마음이

          이리도 울렁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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