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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기

대보름 날 스케치

어젠 정월 대보름.

 

마침 일요일인지라 아내가 오곡밥을 하고

나물을 무치겠다고 했다.

그것도 아홈 가지 나물을 한다고 했다.

아내의 극성(?)이야 진작 강호에 널리 알려진 터.

 

동네 사람들조차 아내를 '수퍼 우먼'이라고 부른다.

같은 동네에 사는 처제와 처남들은  토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스키를 타러 갔다.

그러니 일요일 저녁 늦게 돌아오면 당연히

저녁 식사가 문제가 될 것이니

이왕 하는 거

우리 식구 먹는 데다

조금 더 하면 될 것이라며 예의 그 극성을 떠는 것이었다.

 

다섯 형제의 맏이로서 늘 동생들을 챙기고

또 다섯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을 길러서인지

자연스레 극성이 몸에 밴 것 같다.

그렇지만 이젠 오십 중반으로 접어드니

자연 기가 꺾이고  일을 하는 게 사뭇 겁이 나는 눈치다.

 

내가 좋아하는 김남조 시인의

'너를 위하여'라는 시가 있다.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것은 잊어버리고

못다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랑아 "

 

-김남조 '너를 위하여' 중에서

 

나는 준 사랑의 기억이 희미해서 기억할 것도 없을 뿐더러

 주어야 할 사랑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단지 나는 이 시를 알고 좋아할 따름이다.

 

그런데 아내는

이미 준 사랑은 잊고

주어야 할 사랑 때문에

늘 극성을 떠는 것이다.

아내의 극성을

사랑이라 바꿔 불러도 좋을 것이다.

 

 

 

 

 

 

 

 

 

 

 

 

 

 

 

하기야 음식을 하는 것은 다 아내 몫이다.

 

나?

아내와 나 사이의 묵계 같은 것이 있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

 

그래서 난 아침에도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돌아왔다.

 

 집 주위의 잔디밭 끄트머리께는 여즉 눈이 남아 있었다.

현관 앞 화단엔 사춘기에 들어선

남자 아이들의 코 밑 수염처럼

슬금슬금 새 싺이 돋아 나고 있었다.

아, 신기하기도 해라.

 

 

 

 

 

눈이 녹은 땅을 비집고 나와 옹기 종기 군락을 이룬 'Snow drop'

지난 주만 해도 보이질 않더니

그린 색의 잎과 함께 흰 꽃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었다.

새끼 손가락 두 마디만한 키.

눈 속에서 핀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Snow drop'

하얀 꽃잎, 그리고 거기에 녹색의 하트 무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도 눈처럼 하얗게 되는 것 같다.

아직 피지 않은 꽃잎이 빨리 보고 싶어졌다.

 

 

난 그꽃이 하느님의 전령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한 겨울 내내 푹 움추려 들었던 우리 모두에게

신께서 보내주시는 사랑의 메신저.

 

 

 

 

 

꽃망울이 막 터지려는 snow drop.

실비라도 내려서

살짝 코 끝을 간지르기라도 하면

재채기처럼

꽃잎들이 벌어질 것 같다.

 

 

 

 

 

이건 수선화의 싹들.

 

여기저기서 작은 봄의 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다.

다시 시작되는 생명의 함성.

Spring-봄.

머지 않아

꽃들이 스프링처럼 톡톡 튀어오를 것 같다.

 

 

 

 

 

아내가 하루를 준비해서 상에 올린

오곡밥과 나물들.

 

오른 쪽 어깨가 아프다고 해서

무우를 자른 것 밖엔 달리 도와준 것이 없는데도

아내는 저 음식을 홀로 다 했다.

아내는 정월 보름날 오곡밥과 나물을 먹는 이유를

아이들에게 설명해주었다.

그건 나도 몰랐던 사실,

 

서울에서 자라서 쥐불놀이 같은 걸 해보지보 못했고

미국에 이민 와서 정신 놓고 사는라

정월 대보름까지

챙길 수도 없는 일.

 

그래도 아내 덕에 담백하고 맛 있는

나물 맛을 볼 수 있었다.

나물이 맛이 있어지기 시직한다는 말은

내가 나이를 먹는다는 말과도 같다.

 

 

 

 

 

 

 

 

 

 

저녁 식사 후 남자 아이들은 게임 하느라 바쁘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을 학기부터는

Law school에 진학하는 우리 아들도 예외는 아니다.

모이면 남자 아이들은 게임,

여자 아이들은 수다나 사진 찍어 페이스 북에 올리기가 대세다.

 

 

 

 

 

여자 아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이

자기들의 어린 시절이 담긴 사진들을 모아

우리 부부에게 선물한 사진 카드를 보고 있다.

 

 

 

 

 

조카 하람이가 불타는 장작에 손을 대고 있다.

그런데 저 장작불은  장식일 뿐이다.

전기를 꽂으면 정말 장작이 타는 것 같이 보인다.

처음 보았을 땐 얼마난 신기하던지.

 

우리 집에사람들이 모이면

장작에 불을 지피고 마시 멜로우를 구워 먹던 기억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불을 피우고

또 재를 치우는 일이 귀찮아진 것이다.

벽난로에 불을 지피는 일이 기껍지 않을 때부터

내 삶의 기쁨도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누군가 우리집에 올 때에는

자작나무 장작을 사다 때야겠다.

먀시 멜로우도 준비해 놓을 것이다.

 

사는 것은 작은 일에 기쁨을 얻는 일이 아니던가.

 

나이 들면서 그런 작은 기쁨을

손 안의 물처럼 조금씩 흘리며 사는 것 같다.

 

 

 

 

 

아들 준기와 하람이

 

 

 

 

 

그 때 큰 딸 소영이가 왔다.

  Easter Egg를 가져와

어린 사촌들에게나누어 주었다.

 

무얼까?

 

안에는 M&M(한국에서는 새알 초콜렛?)이 들어 있었다.

 

 

 

 

 

소영이 왼 쪽에 있는 조카 로사와

오른 쪽 어른 로사 (동생의 아내)도 활짝 웃고 있다.

 

왜일까?

 

 

 

 

 

그 쵸콜렛에는 내 흐린 눈으로 보니

올 10월 20일 경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이었다.

달걀 속에서

부화하는 병아리의 모습도 보였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새로운 아이도

소영이도

알을 깨고 새롭게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살아가는 일은

알을 깨는 일의 연속이다.

 

부활은 다름 아닌

새로운 삶을 사는 일인 것이다.

 

껍질 속에 있는 알이

껍질을 깨는 아픔을 통해

하늘을  나는 새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셋때 선영이가 꽃을 선물했다.

 

 

 

 

 

내 동생 부부와 소영이.

 

 

 

 

 

올 해 여섯 살이 되는 하람이도

10월이면 아줌마가 된다.

 

 

 

 

 

모인 사람 모두 모여

오른 손을 들어 안수를 했다.

한 생명을 잉태한 소영이와

또 소영이와 함께 있는 아이를 위해.

 

 

모든 생명의 탄생은 그야말로 '위대한 탄생'이고

'위대한 탄생'이어야만 한다.

 

 

나도 한 마디 했다.

 

 

아이들이 생겼을 때는 잘몰랐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했던

고통과 어려움의 시간을 지나고 보니

아이들이 다 기쁨이고 축복의 원천이었음을 때닫게 되었다고.

 

 

소영이 안에 있는 저 생명은

나에게 '할아버지'라는 달갑지 않은 호칭을 선사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아이가 또 얼마만한 기쁨과 축복인지

알게 될 것이다,

 

나도 껍질을 깨는 기회가 될 것이고.

 

더불어 한국에 계신 어머니와

Arizina에 계신 장인 장모님을 위해 기도하자고 청했다.

 

 

하느님께서 축복하신다면

올 10월이면 4대가 함께

이 지상에 살아 있음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꽃다발, 초콜렛,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한 마디씩 쓴

축하의 마음.

 

 

비록 날이 흐려 보름달을 볼 수는 없었지만

저 아이는 10월이면

보름달처럼 환한 기쁨으로

우리 곁으로 찾아올 것이다.

 

 

다음 주일이면 활짝 피어날 것 같은

snow drop의 꽃잎처럼

희고 산뜻한

신의 사랑과 희망의 멧세지를 지니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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