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득 (어거스틴) 신부님과의 인연 II
까닭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던 내게 아픔이 가시기 시작했다.
치유의 예절과 고백성사를 보고 집에 돌아온 뒤 일주일 가량 시간이 흐르고 나서부터였다.
그것은 여름날 소나기 같은 것이었다.
아무런 기대나 예상도 없이 뜰에 나갔다가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흠뻑 젖듯이
나는 그날 은총의 소나기를 아무런 방비도 없이 맞았던 것이다.
맑은 햇살에 안개가 걷히듯,
내 정신과 내 몸, 그리고 영혼을 감싸고 있던 탁하고 어둡던 기운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한 것 같이
몸과 마음이 회복되어 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나의 몸과 마음이 새로워졌다.
그리고 그 해 가을, 성령 세미나가 있었는데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에도 갈 수 없는 처지였으나 어찌어찌해서 기적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해도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나는 혹시 박신부님이 강사로 오시는지 궁금해서
지도 신부님들의 명단을 살펴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박신부님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적잖이 실망이 되었다.
그럼에도 성령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 나의 마음은 더워졌고
성령을 체험하며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성령 세미나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총고백의 시간이 되었는데
참가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신부님을 선택해서 총고백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총고백을 들어주는 신부님의 명단에 박 신부님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그때의 기분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운명이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찾아온 은총이며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우연이라고 치부했을 터이지만
일련의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하고 난 뒤의 나는 그 일도 신앙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말로, 그리고 그 말만이 그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고
나는 지금도 철석같이 믿고 있다.
나는 총고백을 하기 전에
나름 열심히 준비를 했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준비한 내용을 신부님께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드렸다.
내 삶의 순간순간 일어났던 일들을 말씀드렸는데
사실은 변죽만을 울린 셈이었다.
중간에 신부님께서 "어머니 때문에 그런 것 아니에요?"라고 하시는데
내 눈에서 눈물이 얼었던 수도관이 녹으면서 터져 나오는 수돗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눈물샘이 마른 것처럼
거의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다.
신부님은 내 머리에 두 손을 얹으시면서
"소리 내서 우세요." 하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에 힘입어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그동안 묵혀두었던 눈물을 원도 끝도 없이 몽땅 쏟아내었다.
나는 그때까지 내 인생이 참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 같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풀리지 않는 실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쓰레기 일 뿐이었다.
고등학교와 대학 입시에서 1차에는 모두 낙방을 하고 2차의 인생을 살아야 했고
미국에 이민 와서 야채가게에서 고된 노동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삶이 원망스러웠다.
야채 도매 시장에서 만나게 된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은
이미 자기 이름으로 된 가게도 갖고 있었고
롱아일랜드에 집도 가지고 있는데
나는 누구며 뭘 하며 할고 있는지 회의가 들기도 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롱아일랜드에 있는 자기 집을 보여준다고 나를 데리고 갔는데
그날 내가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스플릿 레벨의 집이었는데
차고부터 반층씩 올라가며 색다른 풍경이 펼쳐지는데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특별히 마스터 베드룸 안의 화장실을 보고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때까지 아파트 밖에는 본 적이 없던 나에게 그 친구의 집은 진실로 환상의 세계와 같았다.
그리고 부러움과 나 자신의 초라함이 내 마음속에 병을 초대했다.
그 모든 것이 어릴 적에 나를 낳아준 어머니와 이별하고
나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새어머니와 살면서 이루어진 환경 때문이라고
잠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를 엄마라고 한 번 제대로 부르지 못한 슬픔과 원망, 그리고 서러움이 내 삶 전체를 관통했던 화두였다.
신부님은 마음 저 밑에 있던 나의 감정을 끄집어내셨던 것이다.
신부님의 말씀은 사혈을 하는 침 같은 역할을 했다.
따끔하게 내 마음을 찔러 피가 나게 하고 혈을 뚫리게 해 주었다.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박 신부님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돌아온 탕자를 안아주는 아버지의 품의 넉넉함과 안락함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신부님과의 두 번째 대면에서
그분을 통해 나는 하느님을 만나고 느낄 수 있었다.
신부님은 내 영혼의 아버지였다.
성령 세미나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한국에서 아버지와 (새) 어머니가 와 계셨다.
나는 어머니를 마음으로부터 안으며 방문을 환영했다.
나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새어머니를 내 어머니로 맞아들였다.
새어머니의 친정은 구교집안이었다.
아버지와 결혼하면서 아버지를 비롯해 나도 천주교 신자로 영세를 받게 되었다.
나중에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도 영세를 받게 되었는데
새어머니로 해서 우리 식구가 모두 영세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신비를 성령 세미나 마지막에 묵상할 수 있었다.
지베 돌아와 새어머니를 안아드리는 순간,
엉클어졌던 내 삶의 실타래도 모두 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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