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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Pienza 일기

Parma 일기 - 내 사랑 파가니니

Pienza 일기 - 내 사랑 파가니니

내가 파가니니를 만난 건 대학교 2 학년 때였을 것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수봉이 형이 하루는 자기 집에 가서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군대를 다녀와서 대학 4 학년에 다니고 있던 수봉이 형이 무슨 연유로

그런 제안을 했는지는 아직도 기억의 타래가 꼬여 있다.

수봉이 형의 작은 형이 집을 비운 사이 우리는 작은 형의 신혼방에 잠입을 했다. 

수봉이 형은 지체 없이 작은형 방에 있던 마란츠 전축의 턴 테이블에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현주곡 1번 LP판을 올려놓았다.

조심스럽고 주도면밀한 것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수봉이 형은 작은 형이 없을 때를 노려 도둑 음악감상을 했던 것이 분명하다고 나는 확신을 했다.

드디어 스피커를 통해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거의 혼이 나갔다.

 

내가 대학교 2 학 년 때 한국의 보통 가정집에서 

마란츠 음향기기를 갖추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가격도 가격인 데다가 음악 감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아주 인색했기 때문이다.

수봉이 형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한테 걸리면 난 죽어."

 

수봉이 형의 작은 형은 보통 음악 애호가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비싼 음향기기를 애지중지했을 것은 너무나 뻔했다.

 

'Paganinin:악마의 바이얼리니스트'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진실로 마란츠 전축을 통해 파가니니를 귀와 혼으로 만나면서

나는 그에게 혼을 빼앗겼다.

그는 정말 어떤 의미에서 악마이다.

 

대학 2 학년 때 처음으로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란츠 전축 한 대를 마련해서

황홀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원 없이 듣는 것이 소원이었다.

돈을 동경하게 해 준 Paganini.

 

미국에 와서 한 달 동안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나는 마란츠 전축을 샀다.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 앰프만은 간직하고 있다.

일종의 sentimental Value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파르마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우리는 피렌체에 있는 마리아와 안드레아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가니니의 무덤이 파르마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곳에 들려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동묘지가 있는데

파가니니의 무덤도 그곳에 있었다.

묘지 입구에서 시간 절약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파가니니의

묘가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나의 파가니니에 대한 사랑을 담아서 말이다.

 

나이 든 남자 직원과 여자 직원이

경쟁적으로 나에게 위치를 알려 주었다.

 

나의 혼을 빼앗고,

나에게 돈에 눈 뜨게 만든 음악가 Paganini.

 

그의 무덤에는 독수리 같은 새가

바이올린과 바이얼린 활을 물고 있는 부조가 있다.

아마 그 새가 그의 바이올린을 하늘로 물어다 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면 바이올린과 함께 그에 대한 내 마음도 

하늘에 있는 파가니니에게 전달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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