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nza 일기 - 아름다운 소풍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일 중의 하나가
낯선 도시에서 운전을 하는 일이다.
그것도 내 손에 익은 내 차가 아니라 빌린 차로
큰 도시를 운전해서 다닌다는 것은 불주사를 맞는 것처럼 공포스러운 일이다.
특별히 이탈리아의 도시 중 밀라노가
내게 공포를 제공하는 도시 중 하나이다.
밀라노는 길도 이상하고 복잡한 데다가
트램과 차가 같은 길을 공유해서 다닌다.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차들 사이로 불쑥불쑥 끼어들 뿐 아니라
좌회전이나 우회전할 때 차 옆을 스텔스 전투기처럼 스치고 지나갈 때면
정말 머리끝이 쭈뼛거린다.
운전대를 놓고 차를 내팽개치고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제는 아침 일찍 Pienza를 출발해서 다섯 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밀라노에 갔다가 오후에는 Parma라는 곳에서 머물렀다.
그런데 다섯 시간 운전에
내가 이렇게 공포를 느낄 정도로 혐오하는 도시 운전까지 해야 했던
밀라노행 여행의 목적 중 하나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을 보기 위함이었다.
다섯 시간의 긴 운전을 해서 밀라노 시 외곽에 있는
문제의 그림이 있는 장소 부근까지
머리끝이 섰다 주저앉는 상황을 반복하며
어찌어찌 도착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주차 문제도 볓 번의 실패를 반복하다가
지나가는 이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었다.
(이탈리어를 해독할 수 없으면 주차 영수증 발급을 받는 기계 앞에서 한 없이 작아져야 한다.)
다섯 시간에 도시 운전까지 해야 했지만
'최후의 만찬'을 직접 알현한 기분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무언가 신비한 느낌이 그 그림 안에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림 감상을 마치고 우리가 머물 장소인
Parma를 향해 밀라노 시를 떠나면서도 여려 난관에 봉착해야 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로터리 한 곳에서 잠깐 길을 잘못 들 뻔했다.
그때 아내가 다급히 길을 바로 잡아주었다.
그러더니
"나 아니면 어쩔 뻔했어?"
라며 생색을 내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건 맞는 말이다.
아내와 결혼하고 세상 살아오면서
아내가 베푸시는 은덕으로 얼마나 나의 삶이 풍요로운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도 나만의 가치와 인생관의 체계가 있어서
아내의 은덕이 늘 고맙지만은 않은 것이다.
고생 고생을 하면서까지 굳이 '최후의 만찬'을
감상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나는 순수한 의문가 회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의 말을 따르면 자다가도 떡이 나오는 건 맞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고
배가 고플 때의 일이지
배불러 꿀잠을 자는 사람에게 떡 먹으라고 잠을 깨우면
그것이 그리 행복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자기 아니면 어쩔 뻔했냐는 아내의 말에
나도 당당히 그리고 결연한 어조로 응수를 했다.
"당신이 없다면 나야 이런 일은 꿈도 꾸지 않지."
라며 애써 이 모든 일을 설계하고 준비한
아내의 노력을 애써 부정했다.
농담처럼 주고받았지만
그런 태도가 나와 아내가 삶을 대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어려움이 앞을 가로막으면 아예 그 길을 가지 않으려고 하지만
아내는 그 길을 한 번 가 보자고 내 손을 잡아 끈다.
그렇게 아내와 살아온 것이 이 달 30일에 41 년이 된다.
이젠 안다.
아내가 하는 말에는 어떤 직관이나 통찰력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가끔은 겪어야 할 수고 때문에 앙탈을 부리면서도
순순히 아내의 말을 따르는 편이다.
다음 행선지는 Parma였다.
밀라노에서 한 시간 반, 그곳의 오페라 극장에서
우리는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레바토레'를 관람했다.
베르디 축제가 열리는 곳에서 베르디의 오페라를 감상한 것이다.
오페라를 직접 관람한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경험인지 모른다.
그것도 세계의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꿈꾸는
꿈의 무대를 직관한 것이다.
황홀했다.
공연이 끝나고 호텔과 극장 사이에 있는 공원을 걸었다.
공원 사이의 길이 가로등 불빛으로 환상처럼 빛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천상병 시인의 '귀천'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마감이 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만약 내가 아내에 앞서 하늘로 간다면
그때 나는 이렇게 고백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소풍, 당신 때문에 정말 아들다웠노라고.-
https://hakseonkim1561.tistory.com/3017#none
'여행 이야기 > Pienza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Pienza 일기 - 친구, 아니면 공범자 (0) | 2023.10.15 |
---|---|
Parma 일기 - 내 사랑 파가니니 (0) | 2023.10.14 |
Pienza 일기 - 당신이 얼마나 귀여운지 아세요? (0) | 2023.10.12 |
Pienza 일기 - 주일미사 (1) | 2023.10.10 |
Pienza 일기 - 연인들의 언덕(Lover's Hill)에서 (0) | 2023.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