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 턱걸이 달랑 한 개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 턱걸이 달랑 한 개

내가 어릴 적에 듣던 노래 중 하나인

'육군 김일병'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신병 훈련 6개월에 작대기 두 개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신나는 김일병

 

오래 가사로만 보면 아마도 예전엔 육군의 논산 훈련소의 훈련 기간이 6 달이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참 긴 세월이다.

그렇게 기나긴 훈련 기간이 끝나면 일병 계급장을 받았던 모양이다.

군인 계급의 단계가 열 개도 넘는데

맨 아래서 두 번째 계급일지라도

훈련소를 졸업하며 받아 드는 작대기 두 개가 주는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작대기 두 개 안에는 피와 땀이 어우러진

시간과 노력의 결과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 성취감이란 돈으로도 살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요즈음 내가 그렇다.

 

근육운동을 시작하면서 

유튜브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상체의 프레임을 넓히기 위해서

꼭 필요하면서도 효과적인 운동이 턱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 년 넘게 Lat Pulldown을 해서

조금씩 무게를 추가하며 광배근 운동을 했더니

윤곽도 뚜렷하게 근육이 생겼다.

그래서 그걸 발판으로 여섯 달 전에 턱걸이를 시도했는데

두 팔의 힘만으로는 1 인치도 내 몸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다른 운동은 노력하면 조금씩의 진전이 있었지만

턱걸이는 감옥의 담장처럼 견고하게 내 앞을 막아섰다.

 

중고 시절에는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체력장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턱걸이가 포함된 모든 종목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턱걸이를 해본 적이 없다.

50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며

근육은 소멸했고 몸무게는 늘었다.

 

턱걸이를 처음 시도했던 날,

어떤 절망감 같은 감정이 나를 휩쌌다.

턱걸이가 뭐라고 나를 그렇게 절망스러운 분위기로 몰아갔는지 모르겠다.

턱걸이 한 번 못한다고 해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 때문에 누가 나를 비난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죽기 전에 턱걸이 한 번은 하고 죽어야겠다는 원을 세웠다.

 

고무 밴드를 이용해서

턱걸이를 할 수 있다는 유튜브의 가르침은

내게 희미한 희망의 빛이 되었다.

고무밴드의 탄성의 도움을 받아도

내 몸을 끌어올리는 일도

그리 쉽지 않았다.

 

운동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전혀 반동은 사용하지 않고 팔과 등의 근육만으로

철봉까지 내 얼굴을 천천히 끌어올리는 일은 

정말 하기도 싫고 힘이 들었다.

싫증도 났다.

 

그런데 여섯 달 정도 지나고 나니 제법 자신이 생겼다.

지난주에 고무 밴드를 사용하지 않고

철봉에 매달렸다.

팔과 등에 힘을 주었다.

위로 당겼더니 내 몸이 서서히 상승을 해서 

결굴 내 얼굴이 철봉의 높이보다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내려왔다.

 

그동안 손바닥엔 굳은살이 생겼고

등 쪽에는 겨드랑이 밑으로 근육이 생겨서

팔을 앞뒤로 흔들며 걸으려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훈련 6 개 뭘 만에 달랑 턱걸이 한 개.

 

그래도 나는 그 옛날 김일병의 마음이 되어

자꾸만 겨드랑이 뒤쪽의 근육을 슬쩍슬쩍 만지며

주책맞게도 속으로 흐뭇해하고 있는 것이다.

 

https://hakseonkim1561.tistory.com/2958#none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사랑법  (0) 2023.08.13
아들아, 넌 아빠가 있어서 좋겠다  (0) 2023.08.12
삼계탕, 빈집털이  (1) 2023.07.24
서른 셋, 큰아들 생일  (0) 2023.07.21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피자  (0) 2023.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