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 빈집털이
중복을 맞아 삼계탕을 사주시겠다고 해서
어제 장인 장모님을 찾아뵈었다.
자식 된 도리는 우리가 먼저 그런 제안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나
꼭 그런 법도나 규범이 우리와 장인 장모님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제안을 하시면
고맙다고 하며
따르기만 하면 그것이 곧 부모님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 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난 삼계탕이나 백숙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삶은 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내가 삼계탕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장인 장모님의 초대에 응하는 것은
이런 일로 한번 더 찾아뵐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그리고 '사랑의 기술'은
주는 것뿐 아니라 받는 것도 포함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올 해에 먹는 삼계탕은
단지 음식이 아니라 부모님의 사랑을 먹는 일이다.
받아들이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부모님의 초청에 응한 것이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점심 식사를 하고
아내와 나는 큰 처제와 동서의 집으로 향했다.
우리가 살던 뉴저지 집에서 몇 집 건너에 있는 처제 집에는
여러 가지 채소가 자라고 있는데
여행 중인 집주인이 며칠 집을 비운 틈을 타서 빈집털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드라이브 웨이에 차를 대고 뒤뜰로 향하는데
갑자기 왜가리 같이 목이 긴 새가 황급히 하늘로 솟아올랐다.
뒤뜰과 데크에는 고추와 호박, 오이, 상추, 토마토 같은
채소가 자라고 있는데 별로 털어갈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도 빈 손으로 올아오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눈에 불을 켜고 살핀 결과,
나는 내 주먹만 한 호박 하나와
제법 통통하게 살이 오른 오이 한 개를 수확할 수 있었다.
아내는 상추와 아직은 푸른빛이 압도적인 토마토 몇 개를 따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냔 돌아오기 허전해서
큰처남 집에 잠시 들러 허락을 받고
깻잎과 아삭고추 서리(?)를 했다.
장인 장모님이 사주신 삼계탕도,
허락받지 않고 빈밭털이(?) 해서 얻은 채소 수확 또한
나는 사랑의 징표라고 믿고 싶다.
삼계탕은 물론 부모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징표일 것이고
허락도 없이 빈뜰털이를 했어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음
또한 형제들 사이의 사랑의 징표라고 나는 믿고 싶다.
당연히 어제 저녁 밥상은 빈집털이와 서리를 통해 가져온
오이와 고추, 그리고 토마토가 다 채웠다.
갓 수확한 채소의 맛은 싱싱했다.
내 육신에 푸른 피가 도는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의 사랑, 형제 사이의 신뢰를 먹은 어제 하루,
내 몸과 영혼이 싱싱하게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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