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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초근목피 - 명아주와 청려장

초근목피 -명아주와 청려장

 

                                                                청려장

 

내가 명아주를 처음 본 것은 국민학교 4 학년 때이다.

도시계획으로 우리가 살던 집이 철거되는 바람에

4학년으로 진급하자마자

제기동에서 삼양동으로

피난 가듯 성급한 이사를 했는데

우리의 삼양동 집은 야트막한 야산의 언저리에 있었다.

문을 나서면 온갖 잡풀이 자유롭게 자라고

그 위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고추잠자리며, 실잠자리, 말잠자리 같은 잠자리가 맴을 돌았다.

 

그렇게 문을 열면 온통 자연이었던 삼양동 야산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수북하게 피어 있던 것이 명아주였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얼굴이나 꽃과 같은 식물의 모습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안면 인식 장애가 꽤나 심각한 내가

명아주를 기억하는 것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매일매일 운명처럼 마주쳐야 하는

명아주가 이루고 있는 광활한 군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4 학년 짜리 남자아이에게

전혀 관심을 끌 아무 매력이 없는 명아주일지라도

가끔씩 할머니가 나물로 묻혀서

밥상에 올리며 그 아름다운 이름을 거명하신 까닭으로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그 모습과 이름이 저장되어 있다.

나물 맛이 그리 트집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해서

밥상 위의 반찬 중에 '좋은 나라'라고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니

명아주라는 이름을 아름답다고 꼽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명아주가 다시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내의 눈에 띈 것이다.

우리의 아침저녁 산책 길에는

수많은 꽃들이 피고 지기에 그 빛깔에 눈을 빼앗기다 보면

명아주 같은 풀에는 나눠 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인데

운명처럼  눈에 들어온 것이다.

 

사실 전에도 눈에 들어오긴 했으나

하찮아서 보아도 보질 못했던 것이다.

명아주를 만난 날 아내는 한 움큼 잎을 뜯어서

저녁 나물로 묻혀서 밥상에 올렸는데

예나 지금이나 그 맛이 입 안에 상큼함을 선사해 주었다.

조금 질긴 맛이 있으나 명아주의 담백한 맛이

아내가 만든 양념장과 얼러져 맛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명아주는 한해살이 풀이지만

가을까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물로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아무런 비용도 치르지 않고

필요하면 산책길에 아무 때나 채취해서 먹을 수 있는 이점이 있는데

여러 가지 약효까지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명아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식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명아주가 자라면

한해살이 풀이긴 하지만 2 미터 가까이 되는데

그것으로 지팡이를 만들어 쓴다고 한다.

그 지팡이를 '청려장'이라고 해서

예전에는 왕이 80이 되는 노인들에게 선물을 했다고 한다.

가볍고 튼튼해서

지팡이 중에는 등나무 지팡이와 함께

청려장이 최고의 지팡이로 꼽힌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세계 노인의 날'인 10 월 2 일에

대통령이 100세가 되는 노인들에게

장수의 선물로 드린다고 들었다.

 

명아주 자체에 중풍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손바닥에 지압 효과가 있어서

중풍에 걸리지 걸리지 않고 장수한다는 기록이 있다.

 

아무 값없이 명아주를 먹고

청려장도 하나 만들어 

등산을 다닐 때 짚고 다니면 언젠가

건강한 몸으로 청려장 받을 나이에 이르지 않을까?

 

명아주 나물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유월의 끄트머리에 가까운 날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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