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식사
목요일, 올해 들어서 가장 더운 날이었다.
화씨 91도, 섭씨로 환산하면 32도가 넘었다.
오루 5 시에 세탁소 문을 닫고
아내와 나는 셋째 딸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향했다.
셋째 딸은 지난 3월에 맨해튼에 있는 뉴욕 주 청사에서 결혼식을 하고
브루클린의 프로스펙트 파크에서 두어 블록 떨어진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7 월 6일이 사위 원기(미국 이름은 Dan)의 생일이고
8일은 딸의 생일이어서
두 사람의 생일 축하도 할 겸,
또 한 달 정도 플로리다에 가서 지내기로 한 딸 부부의 환송회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 모두가 다 아내의 계획)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 살기 때문에
실내를 피해서 딸네 집 근처의 공원에서 간단하게 김밥과 샌드위치로
가벼운 저녁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마침 딸이 살고 있는 아파트 건물 바로 앞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눈에 띄었다.
거기는 주차 공간을 찾는 일이
로또 5등 당첨되는 것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곳이므로
그것은 일종의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 주차하고
딸과 사위를 기다렸다.
주차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원기와 선영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원기의 어깨에는 접는 의자 둘과
풀밭 위에 깔 수 있는 담요 같은 것이 걸려 있었다.
오후 6 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햇살이 내리 쬐이는 곳에 서면 몸이 후끈거렸다.
그러나 프로스펙트 공원 안에 들어가면서
키 큰 나무들이 드리운 그늘에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공원의 초입에 호수가 있는데
우리는 호숫가 한 기슭에 자리를 잡았다.
워낙 공원의 규모가 커서
전혀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호수에는 흰 새들이 하늘을 날다가
날개를 쉬기 위해서 물 위에 착륙을 하고
또 날아오르기를 반복했다.
우리가 머물 자리를 잡았을 때
그 주변에 있던 백조 한 쌍은 막 그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호수를 바라보며
풀밭 위에서 우리는 식사를 했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기(Dan)는 코로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실직을 해서 넉넉한 시간 중 일부를
한국어를 배우는 데 쓰고 있는데
훌륭한 한국어 선생님을 둔 까닭인지
아니면 선천적으로 뛰어난 언어감각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제법 한국어 실력이 는 것 같았다.
한국 이름을 갖기 원했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는데 열을 쏟는다는 사실은
실제적으로 원기가 우리 가족의 한 부분이 되길 원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선영이의 남편으로서 뿐 아니라
우리 부부의 아들로 받아들여지길 원하는
원기의 눈짓에
우리도 그에 맞갖게
마음도 열고 품도 그에게 열어줄 것이다.
저녁 식사를 마쳤어도
긴 여름날 하늘에 흰 구름이 한가하게 떠 있었다.
생야 일편 부운기
사야 일편 부운멸
삶이 구름 한 조각이 생기는 것이고
죽음은 그 구름이 소멸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허무할 수도 있는 삶에서
마음과 마음을 열고 교류하며 사는 것이야 말로
삶의 허무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어차피 사라질 구름이지만
잠시 그 구름을 평화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일,
언제고 헤어질지 모르지만
만나서 눈길을 마주치는 동안
따스함을 나누는 일,
그것으로 삶은 충분히 풍요롭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우리는 저물어가는 해를 등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를 떴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Carpe diem'이라고 외치던
장면이 스쳐갔다.
삶은 그저 한 순간 한 순간
사랑으로 채우고
살아내는 것임을-----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토불이-네순 도르마(Nessun Dorma) vs 막걸리 한 잔 (0) | 2020.07.10 |
---|---|
꽃향기의 기억 (0) | 2020.07.08 |
초근목피 - 명아주와 청려장 (0) | 2020.06.26 |
세탁소에서 생긴 일 - 별 다섯의 무게 (0) | 2020.06.24 |
(할)아버지의 날 (0) | 2020.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