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쩌란 말이냐
어제저녁에 산책을 나가려는데
아내가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자기 전화기에 뜬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뉴욕시 전역에 걸쳐 오후 8 시부터
다음 날 아침 5 시까지 'Curfew'(통행금지)가 적용된다는 내용이었다.
미네소타에서 백인 경찰관이 목을 졸라
질식으로 숨진 한 흑인 때문에 촉발된 시위가
내가 살고 있는 뉴욕에서도 나날이 격렬해지는데
그 전 날 시위대의 일부가 상점에 침입해서
파괴와 약탈이 도를 넘자 주지사가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오후 7 시 30 분,
여전히 해가 지지 않고 비스듬히 우리 아파트 건너 편의 건물에
햇살을 비추고 있었다.
해가 길어졌지만,
통금 때문에 밤이 더 길어지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늘 아침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니
밤 새 비가 내렸느지 군데군데 물 웅덩이가 생겼다.
햇살이 창 턱의 화초들 위에 명랑하게 내려앉았다.
(밤새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아파트를 나섰다.
아침 산책을 나서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파트 앞에 파란색 쓰레기 봉투 둘이 눈에 띄었다.
뉴욕시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 때 사용하는
파란 색 투병 비닐 백 안에는
맥주 깡통과 보드카 같은 술병들이 들어 있었다.
우리 아파트 아래층에 살고 있는
입주자들이 버린 것임이 틀림없었다.
룸 메이트로 살고 있는 두 젊은가 일주일 동안
마셔댄 술의 양이 그 정도라고 어림을 했는데,
내가 한 5 년 열심히 먹어도 쓰레기 백 안에 든
술 병에 들었던 양에는 훨씬 미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알기로 두 젊은이는 직장 동료인데(레스토랑 종업원)
Qurantine(격리)이 시작되며 집콕을 시작했으니
거의 두 달 동안 벌이도 변변하지 못하니
술과 tv로 시름을 달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음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시내 한 편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 특별히 흑인의 생명과 인권에 대한 울분으로.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하고,
아파트 방 안에서는 생존의 희망이 점점 희박해지는 젊은이들의
시름이 술에 젖어가는 시간이 길어진다.
밤 새 내린 비 때문에
햇살은 상쾌하고
주택가 정원의 꽃들은 더할 나위 없이 싱그러운
6 월,
그리고 아침 산책길.
아 어쩌란 말이냐,
속절없이 봄날은 가고,
빈 술병은 자꾸만 쌓여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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