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기, 혹은 지우기
요즈음은 아침저녁으로 동네를 산책하면서
계절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피고 지는 꽃들과 눈을 맞추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산책길을 바꾸면서 꽃들과 만나는 설렘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어두워진 마음에
손톱에 들인 봉숭아 꽃물처럼
색색깔의 꽃물을 들여준다.
꽃과 눈 마주치는 일 외에
가게나 건물에 그려진 그림을 보는 것도
산책길의 기쁨 중 하나이다.
Macdonough와 Malcol X가 만나는 코너에 있는
작은 교회의 벽에 그려진 그림이 내 흥미를 끌었다.
후광이 있는 인물과,
그 후광이 비추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피부색이 모두 검정색이다.
다시 말해서 이 교회의 구성원은
모두 피부색이 검은 사람들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힘을 쥐고 있는 백인이 우월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억눌리고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신의 모습일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리고 맞는 생각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신은 그 교회의 신도들이 생각하고 바라는 것처럼
검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을까?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이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것 같다.
하느님을 어떤 형상, 어떤 색깔로 규정하는 일이야 말로
전능하고 무한한 신의 영역을
인간의 영역으로 제한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무한한 것에 무엇인가 형상을 그리고
색을 칠하는 일을 나는 평생 동안 해 온 것 같다.
세상과 사람, 신을 바라볼 때
내가 보이는 대로 그리고 칠을 한 행위가
나름 정당한 것 같지만
결국은 진실의 원형과는 전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내가 그린 선을 지우고,
칠한 색을 덜어내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자유로움을 위하여도.
색즉시공, 공즉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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