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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세탁소에서 생긴 일 - 돌려 갚기 (Pay It Forward)

 

세탁소에서 생긴 일 - 돌려 갚기

 

올 해로 세탁소를 시작한 지 만 32 년이 된다.

세탁소를 하면서 가장 힘들고 괴로운 일 중 하나를 꼽으라면

고양이 털이나 개털이 묻은 모직 코트나 스웨터를 세탁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탁소의 세탁 기계에 옷을 넣으면 

아무리 지저분한 옷도 저절로 깨끗이 빨아져 나오는 걸로 오해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특별히 동물의 털이 묻은 코트나 스웨터는

빨기 전에 웬만큼 털을 제거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세탁 중에 다른 옷에 달라붙어

세탁 후 다른 옷에 묻은 털까지 제거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러니 이런 옷을 들고 오는 손님들은 대개 나에게 대접받기를 포기해야 한다.

가수 이용복의 노래 중 '가엾으신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라는 가사가

이럴 때 떠오르곤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처형되기 전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소서'라는' 라는

탄원 그득한 기도가 제대로 마음에 꽂히기도 한다.

 

그제 아침 Kennedy 부인이 예의 개털이 묻은

스웨터를 여덟 장이나 들고 왔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 하며

걱정과 근심 어린 인사가 오고 갔으나

내 마음속엔 이미 실타래가 이리저리 엉키기 시작했다.

 

Kennedy 부인이 세탁소를 떠날 때

나의 표정은 이미 맛있는 밥을 먹는데

갑자기 돌을 씹은 것처럼 변해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엄청난 가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일감은 차라리 안 들어오는 것보다 못하다.

어떻게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들만 셋을 둔 어떤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집에 남아나는 게 없어."

 

그 한 마디에 그 집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의 엄마는 아들들과의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느라

목소리는 하이 톤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Kennedy 부인은 아들만 넷인가 다섯을 키우고 있다.

게다가 아들들 모두 보이 스카우트 활동을 시키고 있어서

보통 바쁘고 고단한 삶을 사는 게 아니다.(순전히 나의 짐작이다.)

 

그래서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먼저 개 털이 잔뜩 묻은 스웨터의 털을 대충 털어내었다.

그리고 그 스웨터만 따로 모아 세탁을 한 뒤에

하나하나 털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끈적끈적한 테이프로 털을 제거하고

전기 쉐이버로 보푸라기도 깨끗이 처리를 했다.

두어 시간 동안 내 손길로 서비스를 받은

스웨터는 새 생명을 얻었다.

부활을 한 것이다.

 

어차피 세탁소 일이 그다지 바쁜 것은 아니지만

차분히 마음을 가라 앉히고

그 지겨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때문이었다.

 

집 안 일이며 아이들 키우는 일을

세탁소 일 때문에 바쁜 내 몫까지

아주 열심히, 그리고 마음을 다 해서 해냈다.

 

누군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을 때

나의 손은 나름 바빴기에

나눌 수 있는 여유가 별로 없었다.

지금은 많이 여유로워졌지만''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육아며 집 안 일이 거의 없어졌다.

 

Kennedy 부인 때문에 나는 아내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것이다.

 

나도 시간을 갖고 마음과 정성을 다 해서

Kennedy 부인의 스웨터를 세탁해 준 것이다.

내가 한 일로 해서

Kennedy 부인이 조금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아내에게 갚지 않고

Kennedy 부인에게 갚은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되갚는 일일 수 있지만

그보다도 전혀 상관도 없는 이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돌려 갚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돌려 갚기.'

 

Kennedy 부인이 스웨터를 찾으러 오면

나는 아주 예쁘고 상냥스러운 미소를 그녀에게 지을 것이다.

 

그 미소는 나비효과처럼

나의 아내도 행복하게 해 주리라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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