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동네 한 바퀴
문 닫힌 커피 가게 앞에서
일요일에는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무엇을 할 것인지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
버릇처럼 창 밖을 보았다.
산책을 할 수 있을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칙칙한 회색의 세상.
길 건너 아직은 어린 가로수의 막 틔운 잎들이
싱그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비가 내리지 않으니
아직 다 떠나지 않은,
그리고 더러는 여즉 오고 있는
봄과 만나기 위해
아파트 문을 나섰다.
평소에는 운동 삼아 걷는 길이지만
오늘 아침에는 산책에 더 무게를 두니
발걸음에 여유가 생겼다.
세탁소 문을 열지 않아도 되는 까닭으로
시간이 주는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느리게 걷는 삶.
내 작은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었다.
찍을 때마다 일일이 노출이며,
촛점을 수동으로 맞추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효율성에 익숙해진 내 손이 잘 가지 않는 카메라이지만
오늘 아침은 여유를 부리기 위해
부러 생각해서 챙긴 것이다.
그렇게 꽃구경이며
거리 구경을 하며 걷다가
Ralph 애비뉴에 이르러서는
커피 한 잔을 사서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에는 몇 군데 커피 가게와 식당이 있어서
일요일 아침에는 가끔 들려서
커피와 함께 브런치를 하곤 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엔
감히 가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굳이 커피를 사서 마시려는 것은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가게 문을 연 사람을 격려하고 싶어서 였다.
이 시기에 가게 문을 여는 일은
복잡한 방정식을 푸는 것보다
참으로 마음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 받아야 할 시기에
얼굴 모르는 누군가가
또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내미는
격려의
손길.
그런 나의 마음을 굳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나에게 내미는
위로의 손길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커피가 따.뜻.했.다.
가게 안에서 마실 수 없어서(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길 하나 건너,
문을 열지 않은 다른 커피 가게 옆으로 갔다.
손님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벤치에 앉아서
홀짝홀짝 커피를 목구멍으로 흘려 보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온통 회색빛 뿐인,
단조롭기 짝이 없는 텅 빈 하늘을 배경으로
가로수의 여윈 나뭇가지들이 만드는
검은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나뭇가지의 선을 따라
눈길을 옮기다 보니
나뭇가지 끝에 푸른 잎들이
은근하고 비밀스럽게 돋아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여유롭게 하늘을 쳐다 보고,
그리고
천천히 바라보니,
우리의 눈길이 닿지 않는 나무 끄트머리에
희망같은 봄이 돋아나고
또 커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랬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희망에 속기 보다는 절망에 속는다."라고.
그러나 그 나무 끝 가지에 돋은 나뭇잎은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절대로 절망에 속지 말라."고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연한 녹색의 나뭇잎이,
그래서 더 선명하게,
푸른 희망처럼 살랑거리는
오.늘.아.침.
Fulton Street. 일요이지만 교회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보라색 휘장으로 보아 사순절 언제 부터인가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것 같다.
부활절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사순을 지나고 있는 교회,
우리도 그런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봄이 왔어도 봄이 아닌 시간을 살고 있다.
교회 건물 옆, 나무에는 초록초록 봄이 왔는데----
건물 공사 중. 옛날 건물은 앞 쪽에 비상용 사다리가 있다.
비상시 건물에서 지상으로 대피하기 위한 사다리이다.
갑자기 저 사다리를 오르고 싶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없는 세상으로 오르는 사다리.
천국의 계단이 아닌 천국의 사다리.
그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터
쇠와 나무, 그리고 벽돌.
그 사이로 담쟁이가 벽을 오르는 모습.
어린이 Day Care Center의 벽화
푸른 하늘을 나는 아이 그림.
그런 날은 꼭 올 것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터
건물끼리 서로서로 기대며 힘이 되고 있는데
그런 벽이 사라지고 없다.
벽이 쓰러지지 않도록 세워 놓은 철제 빔.
어느새 나도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담장이 아니라
저런 철제 빔같은 역할이 주어졌다.
다 내려 놓고 싶은 때가 있(었)다.
외롭다는 생각,
힘들다는 생각.
나도 누군가 기대고 싶은 이가 있으면 좋겠다.
내 어깨에 지어진 무게를 없애달라는 기도가 아닌
그 짐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달라는 기도.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던 것
학교도 닫혀 있다.
"No Schedule found'라는 글 때문에
깁지기 가슴이 텅 비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학교 이름이 낯이 익다.
땅콩으로 대표되는 농업 과학자.
한국에서 이 분 전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하늘은 회색이어도 꽃빛이 참 환하다.
홈레스 누군가가 남기고 간 쓰레기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
내 머리,
내 마음 속에도 얼마난 많은 것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걸까?
버릴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은 가지런히---
여인이 갖ㄴ절히 눈물까지 흘리며 바라는 것은?
돈 때문에 돈(?) 여인들
죽은 담쟁이 줄기,
그 위를 새로운 잎이 기어 오르고 있다.
누군가 갔던 길을 힘들여 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이건 또 무슨 건물일까?
확실한 것은 이 건물에는 현재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버스 정류장 안에 누군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일요일 ,사람 통행도 뜸한데
이 아침에 어딜 가려는 걸까?
커피를 마시려고 벤치에 앉아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나무 끝에 파릇파릇 잎이 돋았다.
베어진 가로수,
그 위의 백주 병 뚜껑.
그 옆에 풀,
그 위에 개의 응가
그리고 담배 꽁초.
참 많의 삶의 이야기가 보인다.
일요일 아침인데도 개스 회사인지 전기 회사 사람들이
착암기로 도로를 파고 있다.
완전한 것은 없다.
늘 뜯어 고치고 수리를 해야 하는 우리 삶.
왼 쪽 건물도 예전엔 오른 쪽 건물과
똑 같은 모양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레노베이션을 한 것 같다.
옛 모양을 아주 버리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새롭게 고쳤다.
집에 오는 길.
빈 가지에 나뭇잎이 돋아난 것이 보였다.
그런데 초록이 아니라 벌써 단풍이 든 것 같은 잎사귀 때문에
잠시 어리둥절.
이미 죽은 것 같은 나뭇 가지에서 돋아난 잎.
벌써 빨갛게 단풍이 들었다.
우리 아파트 건너 편 아파트의 벽.
눈이 어지럽다.
빈 것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내 안에 채워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그리고 가지런히 정리해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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