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덕으로(?)
아침 저녁, 한 시간씩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처음에는 우리 아파트를 나서서
길을 건너 다음 블록, 그리고 길 하나를 더 건너
다음 블록에 있는 공원까지
직사각형 모양으로 네 바퀴를 돌았다.
그러면 대충 59 분 정도 걸렸다.
그러다가 이제는 좀 멀리 원정을 시작했다.
부르클린 다운타운 쪽으로
한 열 블록 정도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는데
반환점은 Troop Ave.에 있는 아주 오래 되고 거대한 성당이다.
30 년 넘게 이 지역과 관계를 맺고 살아오면서
이렇게 자세히 동네 구경을 한 적이 없다.
모든 풍경이 신기하고 새롭다.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야 여행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걸으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도
참 이야기 거리가 많은 여행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일에는 운동 삼아 빨리 걷다가
일요일에는 산책 삼아 걸으니
자연 발걸음도 더디고
주변에 눈길을 쏟는 시간이 늘어난다.
지난 주 걸으면서 찍은 사진과,
생각의 낙수를
여기 담아둔다.
일요일 아침은 여유가 있다.
그 여유는 평소에 바쁘게 살아본 사람만이 맛 볼 수 있는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다.
축구를 하지 못 하니
그 여유의 시간이 자못 윤기가 난다.
아내가 내려준 커피 한 잔,
그리고 LP 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책 두어 페이지.
세상에서 더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산책길에 아내가 슬쩍 따 온 꽃,
이 꽃은 아내가 꽃그림을 그릴 때 물감으로 사용된다.
아파트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 빛살
마침 지갑을 가지고 나오지 않아
같은 블록에 있는 처제네 야채 가게에 들렸다.
산책 길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빵을 살 돈을 꾸기 위해서 였다.
오렌지가 눈에 들어왔다.
'Blood Orange'
'오렌지는 오렌지 색을 띄고 있다'는 명제가 무너지는 순간.
오렌지 색이 붉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꽃을 처음 보았을 때 참 징그럽다는 생각을 했다.
꽃은 아름다운 것인데
왜 징그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인지---
꽃은 보통 가는 가지에 피는데
이 나무꽃은 크고 굵은 가지에도 피기에
마치 빨간 버짐이 핀 것 같아서 그런 것이다.
꽃은 아릉다운 것인데 징그럽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불손하게도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침묵하며 살아온 시간.
틀린 생각이 아니라 다른 생각인 것을.
그래도 바닥에 떨어진 꽃은 너무 예쁘다.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그런 생각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참 잘 된 일이다.
보여 줄 것이 하나도 없는 내 모습.
버려진 tv에 내 그림자가 나온다.
다 부질없는 것임을.
이 나무 꽃은 참 신기하다.
가지 위에 잎이 나고,
그와 평행으로 흰 꽃이 수직으로 피었다.
'너 이름이 뭐니?'
전형적인 부르클린 지역의 주택.
이 작은 스쿠터는 자전거나 자동차처럼
빌려서 타는 것이다.
둘째 딸이 요즘 병원으로 출근하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도록
주정부에서 무료로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 존재이다.
목적지까지 가서 그냥 세워두면 필요한 사람이 와서 타고 간다.
그러고 보니 곳곳에 이 스쿠터가 눈에 보이는데
전에도 보았을 텐데, 그 때는 인식을 하지 못 했다.
아는 것 맡큼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느 피자 집 옆 벽면.
Spread Love. It's the Brooklyn Way.
부르클렌에는 정말 사랑이 많아서 그것을 전파하자고 하는 걸까?
아니면 역설적으로 사랑이 결핍되어서 그런는 걸까?
사랑과 정의를 말하는 종교 인 정치인들.
많은 경우,
사랑과 정의가 결핍된 사람이
자신에게 외치는 공허한 메아리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냥 입 닫고 있는 비겁자.
밭을 갈 때.
가정집.
그림자, 계단
이끼가 끼어 있는 이야기가 들리는 듯.
화분은 깨졌어도
푸르게 자라는 옥잠화(?)
아픈 환경 속에서 푸르게 사는 사람들.
오래 된 차.
푸르게 살아나는 풀,
담쟁이
동네 공터의 작은 화원.
문은 닫혀 있고.
나무 발과 철제 펜스,
그 사이의 나뭇잎.
산 것과 죽은 것.
그리고 그 사이의 거리.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민 튜울립.
그러고 보니 저 아이들에게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존재 자체가 감옥인 것을.
Brown Stone House.
철분이 포함된 사암으로 지은 집으로
브루클린과 맨하탄에서 볼 수 잇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한다.
우리 산책로의 반환점.
일요일임에도 성당문은 굳게 잠겨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
과연 종교는 무엇이고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결국 성전은 내 안에 있음을
가로수 은행나무가 눈에 띈다.
드라마 대사 중 사랑은 향기로 기억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은행 나무는
노란 빛으로 기억될까,
아니면 그 향기(?)로 기억될까?
세원진 차 안에 있는 고무장갑 두 켤레.
새로운 풍경이다.
집 밖에 남겨진 맥주 병,
코로나.
나도 즐겨 마시던----
코로나 맥주의 매출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곳곳에 이런 풍의 벽화가 많다.
눈이 큰 여자.
계단을 오르는 자전거.
아내가 앉아 있는 벤치 위의 간판,
이제는 세상을 떠난 우리 Bella와 꼭 닮은 마티즈 그림이 있다.
배달 된 New York Times
일요일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일까?
신문을 가지러 나오는 시간도 늘어진다.
튜울립은 거의 끝물.
펜스 넘어 동네 화원에서
두 여인의 대화가 5 월의 햇살처럼 따스하다.
오래된 레코드 가게.
문의 손잡이가 수도관의 밸브 모양이다.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기 위해 늘어 선 줄.
한 번에 두명만 입장 허용.
그래서 포기.
문이 닫힌 어느 식당.
네 안에 우리 있다.
학교.
산책 길에 학교가 꽤 많다.
"The future is yours."
그렇지, 미래는 꿈꾸는 사람의 몫이다.
롤러 블레이드를 타는 아빠,
발로 미는 스쿠터를 타는 딸.
아이는 할로윈 복장을 하고 있다.
이런 시간에도 낙담하지 않고
삶에서 작은 기쁨을 만드는 일.
그런 사람들에게 미래는 존재하는 것.
이렇게 버려지고 잊혀진 것 같은 건물도 있다.
폐건물 앞에 나무 하나 자라 싹을 틔웠다.
예쁜 꽃,
작은 벌레.
777 번지.
Triple Seven.
미국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기가 막히게 좋은 숫자의 조합이다.
빠징코에서 이 세 숫자의 조합이 만들어지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동전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마지막 7 자가 누워버렸다.
로토에서 한 숫자가 틀려서 꽝이 되는 경우.
이게 세상 사는 맛이다.
언제나 쫄깃쫄깃하게
긴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힘.
잘 나가가는 것 같다가 마지막에 굽어지고 휘어지고 틀어지는,
그래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그런 신비.
동네 공원에 금낭화가 한창이다.
내가 사랑하는 꽃.
우리가 살던 뉴저지 집에도 커다란 Dog wood 나무 그늘 아래
수줍게 피어나서
내 마음 폴더에 저장해 놓은 꽃'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는 심장의 형상과 샅다고 해서
영어로는 'Bleeding Heart'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양 갈래 머리를 한
여자 아이의 모습도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는
아는 것만 보인다는 뜻을 포함한다.
그만큼 상상력과 사고의 범위를 제한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 전에는 열심히 무언가를 외우며 살았는데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서
외우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 생각과 느낌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봄의 절정 같은 아침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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