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기
밤 새 피아니 시모로 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아파트 창 문으로 길을 내려다 보았다.
눈이 침침해서인지
작은 물 웅덩이에 빗방울이 떨어지며
남기는 물무늬가 잘 보이지 않았다.
산책하는데 비가 크리 큰 장애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내와 매일 아침 산책을 하게 된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등을 떠밀어서이다.
세탁소 문을 늦게 여는 까닭으로
아침에 짜투리 시간이 생긴 것이다.
간드러진 봄 비에
나뭇잎은 더 푸르러졌다.
아마도 공기도 나무처럼 푸른 색을 띄고 있을 것 같다.
플라타너스 가로수 아래로 걸어가는 나에게
아내가 말을 건넸다.
"마스크 한 번 벗어봐요."
마스크를 벗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나뭇잎 같이 푸른 공기가 내 코를 통해서
허파로 흘러 들었다.
"아, 이게 천국이다."
마스크 없이 푸른 공기를 숨 쉴 수 있는 곳이 천당이지
천당이라고 해서 뭐 별 게 더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아, 아름드리 고목 저 꼭대기에도
은밀하고, 위대하게
플라타너스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마스크를 끼지 않고
숨을 쉬던 시절.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까지
주욱 천당에 살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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