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슬픔의 봄 - 보릿고개
그제 저녁 식사의 메뉴는 비빔밥이었다.
집에 있는 야채와
아내가 산책길에 뜯어온
질경이와 민들레, 그리고 제비꽃이 추가되어서
맛은 물론이거니와 보기에도 그리 찬란할 수 없는 한 끼 식사였다.
그리고 어제 저녁은 비빔국수였다.
달랑 무채만이 흰 국수 위에 무안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올려져 있었다.
무채로만 구성된 고명의 양이
흰 국수를 제대로 물들이기 부족해서
고추장 한 숫가락을 그 위에 얹어야 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일주일에 서너 차례는
국수를 먹는 호사를 부릴 수 있었지만
어제 저녁을 끝으로 집에 있던 소면마저 모두 다 먹었다.
국수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의 입맛 때문에
한 달이 넘는 동안 마트에 한 번 다녀오지 않고도
그리 빈번하게(?) 좋아하는 국수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국수의 재고는 넉넉했다.
그러고 보니 맛난 수제비도 몇 차례 먹은 기억이 난다.
점심으로 고구마 하나와 옥수수 한 개를
배급(?) 받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어제 점심에는 카레 라이스를
세탁소로 가져다 주며 아내가 한 마디 했다.
"마지막 남은 쌀 탈탈 털었어요,"
코로나 사태 때문에 한국 마트에 쌀이 떨어졌다는 소식에도
우리는 그 전에 사다 놓은 쌀 외에
더 욕심이나 근심을 보태지 않았다.
그러니 있던 쌀로 한 달 넘게 버티려고
아내는 나름대로 지혜를 짜서
비빔 국수, 멸치 국수, 칼국수, 냉면, 짜장면 등으로
분식 장려 운동을 자발적으로 했던 것이다.
워낙 국수주의자(?)인 우리 부부에게
그런 식단이 불만 요소가 될 수 없거니와
오히려 생활의 기쁨이 되긴 했어도
쌀이 모자라서 그랬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국수를 먹는 순수한 기쁨이
불순한 의도로 조금 날아가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한 달 넘는 동안 전혀 한국 마트에 가지 않았다는 것은
그 만큼 우리의 식생활이 피폐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막내 아들이 휴가를 오거나,
우리 아이들 모두가 모일 때 빼고는
육류는 집에서 구경하기 힘이 든다.
가끔 먹는 생선이나 해산물도 다 떨어졌다.
한국인 밥상에 감초라고 할 수 있는 김도 일찌감치 소진되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현대판 보릿고개를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 한국에서 겪던 보릿고개는 생존의 문제였으나
우리가 겪는 보릿고개는
생존의 문제가 아닌
생활의 문제여서
감히 비교를 한다는 일 자체가 불경스럽기 그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겪는 보릿고개는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이기에
감히 보릿고개라는 말을 끌어들이는 것 조차
실제로 보릿고개를 격은 분들께는 참으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게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 않고
사태가 좋아지길 기다리며
우리는 버틸 만큼 버티며 어제까지 지냈다.
주식이 사라진 상황에서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
드디어 아내는 오늘 식료품을 획득하러
출정(?)하기로 했다.
한 달 동안 먹은 것이
국수 종류와
동네 산책길에서 뜯어온 냉이로 끓인 된장찌개,
쑥을 캐다 만든 개 쑥떡, 쑥 인절미,
그리고 진달래 꽃을 얹어 구워낸 찹쌀 전병 같은 것들이었다.
요리라고 할 수 없는
6-70 년대의 기본적인 음식들로 식생활을 해 온 것이다.
고기는 없는,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 현대판 보릿고개의 절정은 아무래도
그제 저녁에 먹은 비빔밥을 '엄지척' 하고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비빔밥은 초근목피의 집합이었다.
피망과 무채, 호박, 양상추, 그리고 아보카도는
그런대로 평범한 비빔밥 재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나
특이하게 질경이와 민들레,
민들레 꽃과 제비꽃이 거기에 화려함을 더 했다.
비빔밥 고명의 필수라고 할 수 있는
고기 볶은 것과 달걀 지단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초근목피의 집합이었다.
아, 그 맛이란----
맛에도 색깔이 들어 있는
입체적인 식사를 한 것이다.
요즘은 다른 반찬 없이 국수면 국수,
된장찌개면 된장찌개 한 가지만으로 식사를 한다.
집 안의 군것질 거리도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며칠 전 체중을 대고, 혈압도 쟀다.
초근목피로 한 달 넘게 살아서인지
20 여 년 만에 체중이 최저로 내려갔고,
조금 높은 것 같던 혈압도 저혈압이 아닐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할 정도로 떨어졌다.
충분하지도 않고,
더더군다나 다양하지도 않은 식 재료를 가지고
한 달 넘는 세월 동안
전혀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밥상을 마주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아내의 지혜로움 때문이다.
이 세상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 중
어느 누가 나처럼 봄 꽃이 식탁에 오르는 호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내년 봄에는
올해처럼 쓸쓸하지 않고 화려한 봄을 맞고 싶다.
나는 화사한 슬픔의 봄날 아침에
슬픔 없는 찬란한 내년의 봄을
아주 간절히 기둘리고 있는 것이다.
봄꽃이 얹힌 비빔밥.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호사를 다 누린다.
며칠 동안 나는 점심으로 고구마와 옥수수를 먹었다.
구황작물이라는 잊었던 말이 생각났다.
구황작물이라는 말과는 전혀 상관 없이 살아온 내의 삶.
산책길 돌 벽돌 사이에 돋은 냉이.
한동안 냉이 된장찌개의 재료로 우리 식탁에 즐거움이 되었다.
너무 뿌리가 굵고 억세어져 더 이상 식재료로 쓸 수가 없다.
내년 봄을 기약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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