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아침 단상 http://blog.daum.net/hakseonkim1561/2281
1. 파.도.소.리.
이 네 음절 속에는 수 억겁의 시간이 들어 있다.
같은 것 같아도
매 번 다른 멜로디와 박자로
바다는 파도 소리를 만들어 낸다.
한 번도 같은 소리의 파도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늘 바다는 파, 도, 소, 리의 변주를 연주한다.
2. 흔적
지난 주일에는 바다가 거의 Board Walk까지 밀려들었다.
Board Walk 위에 얕은 물 웅덩이가 생긴 곳도 있었다.
그래서 지난 주에는 Board Walk 위를 걸어야 했다.
오늘 아침 바다는 전선을 뒤로 물렀다.
파도가 미치는 곳으로부터 Board Walk 중간에
제법 너른 길이 생겼다.
모세의 지팡이가 홍해를 가른 것처럼
자연의 섭리가 바다였던 곳에 길을 튼 것이다.
발이 푹푹 빠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콘크리트 바닥처럼 단단하지도 않은
걷기 아주 십상인,
융통성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서정주의 '바다'라는 시에 나오는
"길은 아무 데도 없고/ 길은 결국 아무데나 있다'
라는 구절을 생각하며
지난 주에는 바다였던 길을 걸었다.
파도가 닿았다가 스러지는 곳 근처에
온갖 모양과 크기의 조개 껍데기가 모여 있었다.
고동 같은 것도 보였다.
그런데 그 조개 껍데기 근처에 무언가 흔적이 보였다.
지금은 물에 잠겨 있지 않지만
마지막 물결이 물러나며 남겨 놓은 흔적, 혹은 사인(sign)
그 모든 것들은 조개 껍데기가
한 때는 물 속에 잠겨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부활 아침.
새벽에 달려간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주검이 안치된 무덤의 돌이 치워져 있음을 보았다.
나중에 달려간 제자들의 눈에
빈 무덤이 보였고,
아마포와 얼굴을 쌌던 수건이 게켜져 있는 것을 보고
눈이 열려
그들은 비로소 예수께서 말씀하시던
'부활'을 본 것이다.
빈 무덤, 그리고 아마포가
부활의 사인이었다.
모래 위의 조개 껍데기.
바닷물이 덮고 있다가 물러가며 남긴 흔적들.
나는 그것들을 보고
"예수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라고 나직하게읊조렸다.
3. 일출.
부활절 새벽,
예수를 보기 위해
무덤으로 슴가쁘게 달려간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혹시 만날 수 있을까,
혹은 때를 놓칠까,
기대감과 조바심으로
바다로 달려갔다.
어둔 기운이 가득 덮인 바다 저 편,
동쪽 수평선 부근의 하늘이 붉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가슴 뛰는 일출.
일출의 장엄함과 신비로움은
잠깐 동안 계속되었다.
일단 솟아오른 해는
그 황홀한 붉은 빛을 금새 훌훌 벗어버렸다.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저 평범한 빛으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 평범함,
그리고 그 평범함 뒤의 어둠.
평범한 빛의 위대함과 고마움은
어둠을 경험한 사람만이 알게 되는 것이다.
빛이 있는 낮의 고마움과 위대함은
어두움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그래서 빛의 시작되는
새벽의 햇살은 그리 황홀한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 다음의
부활,
그래서 부활 아침의 일출이
그리도 장엄했나 보다.
P.S 아내는 집에서 꺾어간 보라색 꽃 한 송이를 바닷가에 두고 왔다.
세월호 사건으로 숨진 영혼들을 위한 거라며.
부활절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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