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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11월 첫 째 주일

11월 첫 째 주일 http://blog.daum.net/hakseonkim1561/2239


뉴욕 시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11 월 첫 째 일요일은

두 가지 사실 때문에 크든 작든 영향을 받게 된다.

그 하나는 써머 타임(Day Light Saving Time)이 해제되는 것이며,

뉴욕 시 마라톤 대회가 그 날 열린다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써머 타임 해제는 일요일 아침 한 시간 더 잠을 잘 수 있음을 의미하며

뉴욕 마라톤 대회는 마라톤 코스 주변의 교통을 

상당히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뜻한다.


써머 타임 해제가 가져다 주는 일화를 모으면 

시리즈로 출간되었던 'Chicken Soup'이라는 책의 수 십 배, 수 백배도 더 많은 양이 될 것 같다.

써머 타임이 해제되던 날, 누군가의 결혼 식에 

맨날 늦는 사람이 30 분이나 일찍 왔다.

결론은 시간이 바뀐 것을 깜빡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사람들마다 적어도 한 두 가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나?

한 마디로 변화가 귀찮은 사람이다.

한 시간의 시차에 적응하지 못 해 오늘도 새벽 네 시에 일어났다.

일년 내내 써머 타임을 적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내가 '꼰대'가 되었다는 확신을 하게되는 것도 

써머 타임이 해제되고 적용되는 시기이다.

바꾸고 적용하는 일이 점점 힘들고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리조나 주는 써머타임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꼰대가 된 내가 은퇴하고 살 곳은 아리조나 주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11 월 첫 째 일요일 아침에 축구를 마치고 난 뒤

아내와 함께 하는 일 중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뉴욕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것이다.

장애인을 포함해서 5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뉴욕 시내의 5 개 보로(Borough-서울의 구같은 단위이나 더 큼)를 돌아

결승점이 있는 쎈트럴 파크까지 달리는 길 가에는

시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마라토너들을 응원한다.


우리 부부도 10 여 년 전부터 뉴욕 마라톤 대회 응원을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이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온 아내의 초등학교 친구를 응원하기 위함이

전통의 시작이었다.

그 친구를 응원하는 것이 목적이긴 했지만

쎈트럴 파크 주변에서 목격했던 그 날의 감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선수들을 빼고 일반인 참가자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이유와 동기를 가지고 달리는데

달리는 사람들도 달리는 사람이지만

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곁에서 함께 달리는 자원봉사자들 때문에 

눈물이 고여 시야가 흐려진 기억은 지금도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맹인 참가자를 위해 소리로 교감하며

길을 인도하는 자원봉사자가 그 한 예이다.

자신은 정작 아무 기록도 남기지 못 하면서

누군가를 위해 그 먼 거리를 함께 뛰어주는 모습은 천사였고

얼굴 없는 영웅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어디 한 두사람이었던가.


응원하는 사람들은 또 어떤가.

물론 자기 친지 중에 대회 참가자를 응원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도 많지만

그 보다도 순수하게 먼 거리를 힘들게 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소리를 지르며 목 품을 파는 사람들도 있고

재미 있는 구호를 써서 흔들며

달리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종류의 일화를 모으면 한도 끝도 없을 정도일 것인데

질서도 없고  냉혹할 거 같은 뉴욕 시지만

뉴욕 마라톤 대회에서 나타나는

시민들의 마음, 질서, 열기 같은 것을 보면

뉴욕은 참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달리는 사람,

자원 봉사자,

갈 가의 응원자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뉴욕 마라톤 대회에서

나는 천당을 본다.

마음과 마음이 모여 이루어내는 따뜻한 세상,

아름다운 극락은 죽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이다.


올 해는 둘 째 딸 사는 동네로 가서 응원을 하고

둘 째 딸 부부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응원을 하러 나갔지만

응우너을 했다기보다는

응원을 받고 돌아온 것처럼

배가 불러서 돌아왔다.


내년에도 또 응원하러 나가리라고 마음을 먹으면서------


아침 축구경기에서 한 골을 넣고 도움 하나를 기록했다.

첫서리가 내렸는데 해가 나며 녹기 시작했다.

참 아름다웠다,

곧 사라지는 아쉬운 황홀함.

돌아오는 길,

공중의 지하철 로선의 그림자가 앞 차의  뒷 유리창에 내려앉앗다.

자원 봉사 밴드가 길굽이마다 즐거운 음악을 연주한다.


동네 정원 앞에서  정원 회원들이 구운 쿠키를 팔고 있다.

아내는 나에게서 10 달러를 강탈해서 쿠키를 샀다.

그리고 그것을 자원봉사 밴드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런 마음들이 모인 뉴욕 마라톤 대회.



던킨 도넛 털모자를 쓴 이탈리아 출신 참가자.

던킨 도넛은 이 모자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 같다.

응원하는 사람들에게도.








특이한 복장의 마라토너.

사진을 찍거나 비데오를 찍으며 달리는 사람

기억하고 싶을 것이다.


단체 참가자들.

누군가가 뛰기를 포기했다.

자신의 기록은 포기하고 그 옆에서 응원하며 함께 걷는 동료.



색 솜으로 만든 응원판.


"DO NOT CROSS"

선을 넘지 말라는 폴리스 라인을 넘은 대부분의 사람들.

이 날은 경찰들도 등 뒤에서 수수방관한다.


나팔꽃도 활짝.


아이들도 목말을 태우고---


자기 가족을 만나 웃통을 벗고 세리모니하는 사람

그리고 다시 옷을 입고 달리기 시작.

기록이 아니라 축제다.







식당에서부터 밴드에게 이어지는 전기선.

밴드의 음악소리는 들려도 이 전기선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활기찬 음악이 사람들의 귀에 전달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이런 전기선 같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모여 만드는 축제.

돌아오는 길 

어느 빈 가게.

늦가을 풍경이 가게 안ㅇ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이 빛깔 같은,

꼭 그만큼의 가을.


딸 부부와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가는 도중 길거리에 나온 LP 한 장을 샀다.

1 달러.

미국에서 발매된 첫번 째 아니면 두 번 째 비틀즈 앨범.

상태가 좋은 것은 3 천 달러까지 온라인에서 매매가 된다.

집에 들어와서 들어보니 삼겹살 굽는 소리가 들린다.

나름 향수가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