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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가을여행

가을여행


https://youtu.be/dGDmZjCa1GM (슬라이드쇼)



가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아내의 귀띔으로 버몬트주로 간다는 것은 알았지만

 

도착해보니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딴판인 세상이 나를 맞았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버몬트 주는 9할이 산이고

 

노름판 개평처럼


드문드문 1할가량의 평지에 아주 인색하게 마을이 형성된 곳이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도 내 경험에 어긋나지 않은 모습으로


버몬트는 나를 맞았습니다.

 

단풍이 다 지고 난 을씨년한 가을 산속을


지루하게 달려야 했습니다. . 

 

산과 산은 길로 이어졌고 


그 길은 오르락 내리락을 거듭하더니


결국 우리를 평지에 데려다 주었는데


지금까지 다녀 본 버몬트의 어느 곳보다 크고 넓었습니다.


 

거기는 South Burlington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버몬트의 도시라는 것은

 

산과 산 사이 계곡의 작은 평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South Burlington에 도착해서야 버몬트에 대한 나의 편견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한 번 내가 얼마나 많은 편견과 오류를 가지고 살아가는 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의 한 쪽은 호수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Lake Champlain이라는 곳이었습니다.

 

호숫가에는 나뭇잎에 단풍이 농염하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높은 산을 달려 올 때 그 곳에는 이미 가을이 사라진 뒤였습니다.

아직 남아서 가을의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는 단풍잎 때문에

마음이 명랑해졌습니다.

 

단풍의 색이 처연했습니다

 

우리는 햇살이 듬뿍 묻은 단풍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한참을 그 빛깔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넋을 잃고 붉고 노란 나뭇잎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가 많이 기울었습니다.

 

단풍에서 아쉬운 눈을 떼고 호수로 걸음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호숫가에 발을 디디었을 때

이를 수 있을 곳까지 올라갔던 시소의 다른 한 끝이 지상으로 떨어지듯

그렇게 해는 속절없이 기울고 있었습니다.

 

말이 호수지 길이가 172km에 이르고 

가장 폭이 넓은 곳은 23 km나 된다고 하니

언뜻 보면 바다인지 호수인지 구분을 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호수의 북쪽 끝은 캐나다에 닿아 있고

또 한 쪽은 뉴욕 주와도 닿아있습니다

하나의 호수인데 

이렇게 가름을 하는 것이 참 우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을 가지고 소유와 소유권을 따지는 것이 사람들의 속성인가 봅니다.

 

그러는 사이 해는 점점 더 가속도를 내며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구름이 제법 끼어있었던 까닭으로 하늘이 찌뿌등했습니다.   

 

해가 호수 저 편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호수가 끝나는 곳은 캐나다인데 

그 쪽에서는 우리가 어둠을 맞을 때도 해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그 시간이 누구에게는 빛이고

또 누군가 에게는 어둠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행복이나 불행은 다른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둠 속에만 있으면 밝음을 모르고

빛과 함께 있으면 어둠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간에도 다른 삶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아내는 이번 여행을 결혼기념 여행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아내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어느덧 해는 호수 저 편으로 넘어가고

우리가 있는 곳에 해가 있었다는 증표로 

호수 끝 쪽 하늘이 발그스름하게 물들였습니다

 

10월의 마지막 전날이 우리 결혼기념일입니다.

하루 밤만 자면 결혼3 7주년이 되는 거지요.

우리는 37년 동안 거의 같은 시간을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부부가 일심동체라는 말을 믿기도 하고,

또 믿지 않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다른 빛을 띄고 있었고 

지금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호수로 들어오던 길에 있던

붉은 단풍과 노란 단풍처럼 말입니다.

 

굳이 같을 필요가 없습니다.

 

노란 단풍과 빨간 단풍이 어우러지면 

그 것처럼 보기 좋은 가을의 모습이 더 있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노란 빛으로

너는 빨간 빛으로 존재하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자기 자리에서 자기 빛으로 존재할 때

우리가, 그리고 세상이 조화로운 것 같습니다.

 

해가 졌습니다.

 

이미 보이지는 않지만 

해가 있었다는 흔적 같은 것이 빨갛게 하늘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황혼의 호숫가에 서있는 그녀를 바라봅니다.

그녀의 머리카락도 붉게 물이 들었습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녀를 그냥 있는 대로 바라보는 일입니다.

지는 해를 붙잡으려 하지 않고 

그냥 무심히 바라보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마 그녀도 37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이고 오면서

나를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는 법을 체득한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배운 것은 보는 법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듣는 법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나의 삶,

아내의 삶,

우리가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그렇게 있는 대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가 머물렀던 자리에도

노을처럼 발그스름한 단풍 물이 들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하루

안타깝고 아쉬운 가을 날이 저물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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