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세탁소에서 생긴 일 - 조고각하((照顧脚下)

세탁소에서 생긴 일 - 조고각하((照顧脚下)


"이 거 내 코트 아니예요."


오늘 아침 세탁소에서 코트를 찾으러 온 손님이

코트를 받으며 한 반응이다.


이럴 때 내 머리는 흰 종이가 된다.

하얗게 질려버린다는 통속적인 표현이 이런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나의 뇌가 하얗게 질려버린 것이다.


노안으로 눈이 흐려져 

가끔 번호를 잘 못 읽어서 그런 실수를 하는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이 아닌 까닭으로

정신을 수습하고 손님의 옷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 보았다.

돋보기의 영점 조준을 정성스레 하고서 말이다.


손님의 옷을 구별하기 위해 코트 안에 붙여 놓은 태그와

인보이스에 있는 태그가 정확하게 일치했다.

당연히 그 손님의 옷이 분명한데도 

자신의 옷이 아니라고 할 때의 스트레스는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내가 왜 세탁소를 시작해서 이 고생을 하나 하고 

신세 한탄을 하게 하는 으뜸 원인이기도 하다.


일단 그 손님의 코트가 맞음을 확인했고

다음은 설득과 설명의 절차가 남았다.


찬찬히 티켓을 살펴보니 '무척 더럽고 먼지가 많다'고 묘사되어 있었다.

"옳거니!!!"

이러면 게임 끝이다.


손님이 가져올 때 코트는 완전 만신창이의 상태였던 것이다.

한 마디로 구제불능의 상태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세탁소의 신공에 정성을 더 해 아주 완벽하게 세탁을 한 결과,

그 코트는 환골탈태해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이었다.


그 손님의 자기 코트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지저분함이었을 것이다.

그 지저분함이 산뜻하고 깨끗함으로 변한 까닭으로 

자신의 몸에 걸치고 다니던 자신의 코트에 일어난 변화를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 손님은 자시의 코트임을 확인하고서야

잽싸게 돌아서서 총총히 세탁소 문을 나섰다.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우리의 노력과 노동의 대가를 받긴 헀어도

세탁비와 함께 덤으로 받은 스트레스는 누가 보상해 줄까?


-저런 사람 때문에 내가 제 명에 못 죽지.-

넋두리와 원망을 늘어놓고 있을 때

손님이 문을 밀치고 나가는 틈을 타서

겨울 바람이 세탁소 안으로 밀려들었다.


아랫도리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눈이 발 쪽을 향했다.


*조고각하((照顧脚下)


세탁소 안으로 밀치고 들어 온 바람이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그 말이 생각난 것은 우연의 일치였을까?


내가 남에게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나도 남에게 스트레스를 주며 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늘 피해를 입는 것 같지만

다리 쪽에 불어온 바람 때문에

나도 누군가에게 스트레스를 부지불식간에 주며 살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의도했든 아니든

나도 나의 말과 행동,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스트레스의 원인 제공자임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내 발 밑을 찬찬히 내려다 보았다.


*조고각하는 삼불야화(三佛夜話)라는 화두에 등장한다. 중국 송나라 오조법연 스님에게 삼불(三佛)이라 불리는 세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 밤길을 가다 부는 바람에 등불이 꺼져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이때 스승인 법연 스님이 물었다. “그대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 번째 제자가 말했다. “채색바람이 붉게 물든 노을에 춤춘다.” 두 번째 제자가 말했다. “쇠로 된 뱀이 옛길을 건너가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제자가 말했다. “발밑을 비추어보라(照顧脚下).” 세 제자의 대답 중에 스승을 기쁘게 한 대답은 당연히 마지막 답변일 것이다. 스승은 어둔 길에 등불마저 꺼져 위험하니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 번째 제자의 말처럼 자기 발밑을 살펴 걷는 것이 최선이다. 수행의 과정이나 불자의 길도 어두운 길을 걷는 것과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자신을 살펴 수행자로, 불자로 참답게 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출처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