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과 생일 유감 (2011.10) 한국사람들은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흔히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 대신 ‘미역국 먹었냐’는 질문을 자주하는 걸 본다. 그런데 나는 생일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왜 미역국을 거의 의무적으로 먹어야 하는지 도통 그 까닭을 이해할 수가 없다. 누군가의 생일에 생일 맞은 사람이 어머니께 미역국을 끓여서 대접을 한다면 몰라도 말이다. 만약 자기 생일에 어머니께 미역국을 대접을 한다면 자기를 낳아주신 어머니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다. 자신을 낳고 경험했던 기쁨과 아울러 고통의 기억까지도 서려 있는 미역국을 드시며 그 날을 기념(?)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오는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서도 나를 낳느라고 무진 고생을 하신 어머니께 미역국을 끓여드리지는 못하고 오히려 받아 먹는다는 것은 내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다른 때는 몰라도 생일에 미역국을 대할 때면,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내 능력으로는 풀 수 없는 수학문제를 마주한 학생의 마음이 되곤 한다. 생일에 미역국을 먹을 때의 막막한 느낌은 결혼해서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른 새벽에 집을 떠나는 내게 아내는 한 번도 거르는 적 없이 생일의 점심 도시락으로 밥과 함께 미역국을 싸주곤 한다. 옃 해 전까지만 해도 나는 생일에 왜 미역국을 먹어야 하는 지 그 까닭도 모르면서 삼십 년 가까이 꼬박꼬박 아내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먹었다. 마치도 투정하지 않고 미역국을 먹는 착한 남편이 되는 것만이 거르지 않고 미역국을 끓여주는 아내의 갸륵한 정성에 보답하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말이다. “미역국은 여자들이나 먹는 것”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계셨던 아버지의 태도 또한 어릴 한 어릴 적부터 미역국을 먹는 나의 자세에 영향을 미쳤다. 미역국을 먹을 때면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것 같아서 편한 마음으로 맛있게 미역국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미역국은 그야말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던 셈이다. 적어도 쉰 한 번의 생일을 맞을 때까지는 그랬었다. 내 쉰 하나 생일을 맞던 새벽에도 여전히 미역국이 들어 있음이 분명한 도시락 가방을 무심히 건네 받으며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늘 하던대로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사실 매일 묵주기도를 한다고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형식만 있고 내용은 속 빈 강정 같은 것이 내 기도의 본 모습이다. 기도 중에 때로 한국에 가서 친구들과 만나서 술 한 잔 하고 어떤 때는 우주여행까지 하고 돌아오니 말이다. 마침 그날은 목요일이었고 따라서 ‘빛의 신비’를 하는 날이었다. 늘 그렇듯이 무덤덤하게 시작을 했는데 네 번 째 단을 묵상(?)하는 중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름날 갑자기 대책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그렇게 세차게 눈물을 쏟으며 꺼억꺼억 소리까지 내며 한 동안을 울었다. 그렇게 울고나니 지리한 장마 끝에 해가 나듯 내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았다. 사실 쉰 살 생일에 한 해 동안은 희년의 삶을 살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바로 그 한 해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나를 호되게 몰아쳤다. 경기마저 푹 가라앉은 데다가 생각지도 않던 재정 문제가 여기 저기서 나를 옥죄었다. 어떤 식으로든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음에도 그런 면에는 영 무능하기 짝이 없는 나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련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거룩한 변모를 묵상하면서 이유도 없이 눈물이 흘렀던 것은 이래저래 주변머리 없는 내게 그분께서 힘과 용기를 주시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예수께서 전도 여행을 하시면서 자신의 몸과 영혼도 몹시 지쳐 있으셨으면서도, 희고 거룩하게 변화한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심으로 해서 제자들에게도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셨던 그 사건이 ‘속 빈 강정’같은 기도 중에 내게도 일어난 것이다. 쉰 한 살 생일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일하는 중간 중간 눈물이 쏟아지곤 했는데 아내가 싸준 점심을 먹으면서도 눈물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밥 한 톨,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꾸역꾸역 다 먹었다. 흐르는 눈물이 미역국에 떨어졌지만 그것이 간이 되었는지 미역국은 내가 태어나서 먹어본 최고의 미역국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힘내어 살아야겠다는 의지 같은 것이 세포 마디마디에서 힘찬 함성처럼 터져 나옴을 느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도시락 가방에 함께 넣어준 초콜렛을 먹으며 아내의 카드를 조심스레 열어 보았다. 카드의 내용 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Because of You, I Know Love is Real.“ (당신으로 해서 나는 사랑이 실제로 존재함을 압니다.) 그 구절을 읽으며 미역국을 생일에 먹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생일에 먹는 미역국은 그냥 미역국이 아닌 것이다. 미역국에는 미네랄이나 철분 같이 추출할 수 있는 영양소 뿐 아니라 미역국을 끓이는 사람의 위로와 희망 그리고 용기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양소도 듬뿍 녹아 있는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 아무리 버겁다 한들 저 위로부터 쏟아지는 위로와 더불어 아내와 이웃의 사랑이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랴? 걱정 대신 내가 해야 할 일은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이면 아내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맛나게 먹는 일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또 한 해 동안 이웃을 씩씩하게 사랑하는 일이다.
|
나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