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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꽃, 그 뒤의 보이지 않는 손길

꽃, 그 뒤의 보이지 않는 손길





나는 프라다를 입지 않습니다.

나는 악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솝 우화의 Sour Grape)



카페 유리창네 반사된 정원사의 모습




그 날 아침,우리는 비엔나 공항 근처의 어느 쇼핑 몰에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부부와 

내 고등학교 동기 두 부부를 포함한 여섯 명을 말한다.


우리는 프라하와 비엔나 짤즈부르크 여행을 마치고

파리로 가기 위해 비행장으로 가는 길에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그 곳에 들른 것이었다.


친구 중 하나가 아내에게

변변한 선물을 해 준 기억이 없다면서

아내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싶다해서 부러 들린 것이다.

다른 친구 하나도 아내에게 무언가 선물을 하겠다고 추임새를 넣었다.


친구라는 사람들이 내 앞에서

아내에게 줄 선물 운운하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지만

대세를 거스릴 수는 없었다.


쇼핑 몰은 내게 있어서

지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지옥에 가장 가까운 곳이다.

쇼핑몰에만 가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혈압이 상승하는 것 같은 이상 신호가 내 몸에 온다.

그걸 아는 아내는 내게 쇼핑가자는 제안을 아예하지 않는다.

이런 면을 보면, 양처임에 틀림없다.


그럭저럭 쇼핑 몰에 발길을 끊은 것이 10 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 먼 이국 땅에 가서 내가 쇼핑몰에 들린 것은 

아이러니 중에 아이러니였다.

그러나 도리가 없었다.

나는 대충 쇼핑몰을 거닐다 카페에 앉아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해서 홀짝거렸다.


그 때 카페 유리창을 통해 

쇼핑물 거리의 꽃을 다듬는 정원사와 

그가 꽃을 다듬기 위해 오른 사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 그렇구나!)


쇼핑몰 곳곳의 꽃들은

저절로 그 자리에서 고운 자태를 뽐내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고단함을 통해서

꽃들이 비로소 빛을 얻고 

사람들도 그렇게 보살핌을 받은 꽃들로 해서 

기쁨을 얻는 것이다.


마음이 담긴 선물로 해서

두 친구 아내의 얼굴은 꽃처럼 밝아졌던 걸로 기억한다.

물건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애써 확인하지는 않았다.)


"나는 과연 내 마음이 담긴 손길로

아내나 이웃에게 밝은 빛을 선사하는 그런 사람일까?"

라는 생각이 갑자기 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홀짝거리던 에스프레소의 맛이 유난히 쓰게 입에 쓰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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