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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떠난 자리, 떠날 자리

떠난자리, 떠날 자리

 

막내 아들이 떠났다.

 

아파트가 작아서 손님이 올 때마다 임시방편으로 사용하는,

바람을 넣었다 뺐다 하는

공기 침대 위에서 열흘을 뒹굴다 

휴가를 마치고 어제 부대로 떠났다.

 

공기 침대는 바람을 빼서 따로 보관하고 보니

이불과 담요, 그리고 베개가 침대 있던 자리에 남아 있었다.

 

얇은 담요 두 장과 이불, 

그리고 베갯잇까지 하니 일고 여덟 가지는 되는 것 같았다.

 

"이 것 좀 빨아줄 수 있어요?"

 

아내가 말씀하시면

부탁이라고 듣고

명령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 몇 개를 빨고

오늘 아침에 부지런을 떨며

나머지까지 모두 빨았다.

그 중 흰 이불 하나에는 검은 보푸라기가

한 쪽 면 의 3분지 2를 덮고 있어서

세탁소에서 쓰는 쉐이버로 제법 말끔하게 제거를 했다.

쾌재를 부르려는 순간 

흰 이불 위에 누런 얼룩이 서너 군데 남아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보푸라기에 가려 보이지 않던 얼룩이 빼곡 얼굴을 내민 것이다.

 

나의 비법을 사용해서 얼룩을 제거한 후

다시 이불을 빨았다.

이불은 흰 빛을 내며 환하게 나를 맞았다.

 

우리 막내 아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가는 일에 정신을 쏟느라

자기가 떠나고 난 뒤의 흔적을 떠올릴 여유가 없을 것이다.

 

깨끗하게 빤 이불과 요와 베갯잇은

다음에 쓸 때까지 잘 보관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머물고 떠나는 일을 계속하며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알든 모르든,

싫건 좋건, 

삶의 흔적을 남기게 된다.

그 흔적을 지우고 청소하는 것은

뒤에 남은 사람의 몫으로 남게 된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승을 떠날 때 

뒤에 남은 사람들이 나의 흔적을 청소하는 데

너무 힘이 들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물질적인 소유도 줄이고

찌꺼기 많이 고인 마음도 좀 털어내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저승으로 떠날 때,

가벼운 마음으로 휘적휘적 걸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흔적의 뒤치닥거리를 할 누군가에게 

미리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그런 고마움으로 오늘 하루 지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