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사위상 후보(Son-in law of the year Prize)는?
어제 뉴저지에서 몇 부부의 모임이 있었다.
그래서 조기축구를 하는 나를 따라
아내도 새벽 다섯 시에 부르클린의 아파트를 나섰다.
내가 축구를 하는 동안 아내는 우리 빈 집을 둘러 보고
(우리 집은 1 년 반 동안 세를 주었는데 7월 말로 리스 기간이 끝나서 비어 있는 상태)
친구와 커피를 마시거나
운동 삼아 우리 동네를 걸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축구를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나를 데리러 올 수 없으니
Northvale에 있는 맥도날드로 오라는 것이 아닌가?
우리 손주, Sadie와 Desi랑 함께 있어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 자기 집에 있어야 할 손주들이
그 이른 아침에 우리 동네에 와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로 느껴졌다.
그러나 손주들을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오늘 아침 운동장 잔디 위에 피어 오르던 아침 안개가
해가 나며 스르르 사라진 것처럼
그런 궁금증은 흔적을 스스로 지워버리고 말았다.
손주들을 보는 건 늘 새로운 기쁨을 선사한다.
결혼을 한 뒤의 나의 삶을
둘로 나눌 수 있다면
할아버지가 되기 전과,
그 뒤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할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그 전까지 열심히 허리 아프게 산 나의 삶에 대한 위로며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기쁨을 세상에서 경험한다는 말과 같다.
어린 왕자에서 여우의 입을 빌어서 했던 그 말, 그 마음을
실제로 내 안에서 체험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령 오후 네 시에 네가 온다면, 세 시부터 나는 행복해질 거야."
Sadie와 Desi의 이름만 들어도 나는 행복해진다.
그 아이들이 일요일 아침 내 근처에 와 있다는 사실 하나로
얼마나 흥분이 되는 지 몰랐다.
나는 그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되기 이전부터
그 아이들로 해서 행복해지는 운명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같이 축구를 하는 막내 처남이 오지 않아서
할 수 없이 Closter에 사는 팀 동료에게
부탁을 했다.
(내가 팀의 단장이긴 하지만
지위를 이용한 갑 질은 없었음을 밝혀둔다.)
결국 맥도날드에 도착해서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손주들과 반가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손주들은 류시화의 표현처럼
보고 있으면서도
늘 그리운 존재들이다.
손주들과 대면을 한 뒤에야
왜 그 시간에 그 곳에 있는 까닭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차에서 내려 축구장으로 향하는 내 모습을
도촬(?)을 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보냈는데
큰 딸이 마침 그 사진을 보고
엄마가 뉴저지에 출현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큰 딸은 마침 아이들 좀 보아 달라고 부탁을 하려 고민을 하던 차에
구원의 빛을 보게 된 셈이었던 것이다.
물 만난 고기 입장이 된 딸에게
고기가 물로 뛰어들 것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기꺼이 물이 되어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딸네 집까지 가서 손주들을 데려 온 것이다.
큰 딸네는 새 집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부동산 시장에 내어 놓기 위해
집 안을 치우고 수리할 곳은 손을 보기 위해
하루를 필요로 했고
손주들을 보아 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왼 쪽 오른 쪽,
앞과 뒤를 가리지 않는 아내의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인데
(정치인들이 잘 쓰는 좌고우면 하지 않겠다는 표현은 정말 아내에게 적확한 말이다.)
그런 아내의 성향이 오늘 아침의 미스터리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제는 손주들과 행복한 하루를 보내게 되어서
얼마나 기쁘고 보람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헤딩으로 한 골을 넣은 기쁨과
손주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은
완벽한 날씨까지 합세해서
내게 후한 선물을 주었다.
이야기가 오락가락 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손주들이 내 삶에 어떤 존재인가라는 것이다.
그럼 슬슬 사위들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내게 사위가 둘 있는데
둘 다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큰 사위는 이이리쉬 계, 둘 째 사위는 덴마크 계 미국인이다.
그러니 애당초 한국에서와 같은
장인과 사위 같은 관계를 바라지도 않았고,
기대하는 그런 살가운 사건은 일어나지도 않는다.
내가 사위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사위(Son-in law)라기 보다는
내 딸의 남편(My daughter's husband) 정도다.
내 딸의 친구처럼 내가 안면을 트고 지내기는 해도
몰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존재들이다.
내 생일이라고 해서 선물은커녕,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그런 존재들인 것이다.
물론 나도 그 친구들 생일이라고 해서 전화를 하거나
선물을 보내는 등의 살가운 일을 행동으로 옮기지도 않는다.
모든 일과 거래는 딸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주일 전에 둘 째 아파트에 간 적이 있었다.
무척 더운 날이었는데
4 층의 아파트가 제법 시원한 것이 아닌가?
(사위는 코넥티컷에 있는 부모님 집에 가고 없었다.)
중고 에어컨을 구입해서 창에 달았는데
섭씨 30도가 넘는 날씨였음에도
아파트 전체가 쾌적할 정도로 시원했다.
아내는 우리 아파트에 있는 에어컨 상태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며
둘 째 딸네 아파트의 에어컨을 찬양하는 발언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 왔는데
둘 째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화요일 저녁에 사위와 함께 에어컨을 달러
우리 아파트로 오겠다는 것이었다.
마다할 이유는-----
물론 없었다.
사위가 알아서 한 일은 아닐 것이고
둘째 딸의 닦달로 이루어진 결과물일 것이다.
마침내 화요일 저녁에
둘 째 부부가 와서 거뜬하게 에어컨을 설치해 주고 떠났다.
아파트 3 층까지 무거운 에어콘을 들고 올라와서
에어콘을 설치할 브래킷을 설치하는 등,
사투를 벌인 끝에 우리 아파트도 제법 빵빵한 에어컨을 소유하게 되었다.
나는 진정 고마워서 둘 째 사위에게 Lip Service를 해 주었다.
나를 비롯해서 우리 아들들,
통칭해서 우리 집 남자들은 이런 일에는 한결 같이 젬병이다.
사위가 힘을 쏟아 일을 하는 동안에도
휴가 차 와 있던 막내 아들은 침대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한 마디로 에어콘 설치는 우리 집 남자들에게는 'Mission Impossible'이었는데
둘 째는 그 불가능한 그 일을 거뜬하게 해치웠으니 어찌 고맙지 않을까?
"Just now, You are nominated as s 'Son-in-law of the Year Prize."
(그대는 방금 올 해의 사위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둘 째 사위가 활짝 웃었다.
나의 말이 빈 말이긴 했지만
자신의 노고를 인정 받았음에 기뻐하는 웃음이었을 것이다.
하기야 둘 째 부부는 부러 시간을 내어서
우리 집 데크를 청소해 준 적도 있다.
파워 워시 장비를 렌트해서 데크를 하루 종일 청소하고
이튿날 방수처리까지 해준 적도 있다.
꼬박 이틀이나 걸리는 작업이었지만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일을 해 준 것이다.
그런 서비스를 큰 사위에게는 별반 받은 기억이 없다.
힘들여 일 한 둘 째 사위가 돌아간 뒤에
나는 아내와 뒷담화를 시작했다.
"아무리 둘째가 그래 봐야
내가 제정한 '올 해의 사위상'은
큰 사위 Robert에게 줄 거야.
왜냐고?
Robert는 Sadie와 Desi의 아빠잖아?"
나에게 손주들은 그야말로 'Everything'이기 때문이다.
둘 째 부부는 이이 갖는 일을 박사 과정이 끝난 후로 미루어 놓았다.
큰 사위와 둘 째 사위 모두
올해의 사위상을 공동 수상할 날은 언제 올까?
Mcdonald's Play ground에서 놀고 있는 손주들 동영상
아내가 도촬한 내 뒷 모습
아이들에게 낸 퀴즈
내가 골을 넣을 때면 사진으로 퀴즈를 낸다.
아무도 못 맞추었다.
헤더로 한 골을 넣었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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