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에서 생긴 일 -아빠의 손으로 http://blog.daum.net/hakseonkim1561/2204
Walla가 담요 넉 장을 들고 세탁소를 찾아왔다.
그런데 덜컥 짜증이 났다.
때를 빼고 빨래를 하는 직원 Efren이 휴가를 가서
그의 일을 고스란히 내가 물려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담요 중 하나는 자잘한 오리털이
화살촉처럼 빼곡하게 박혀 있었는데
마치 담요 위에 희끗희끗 눈이 덮인 형상이었다.
그걸 보는 순간 머리속이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겨울에 쓸 거면 날이 좀 추워질 때 가져 오면 오죽 좋아?
사람도 모자란데 이 한여름에 담요를 가져올 게 뭐람."
내 주종목인 카운터 일과 함께
풀 타임 한 사람 몫을 감당해야 할 내 처지에 대한
넋두리였는데
입 밖으로 내어 놓지는 않았다.
Wall는 우리 세탁소로 보아서는 A 등급의 질이 좋은 좋은 손님이었고
어떤 면에서 우리 둘 째 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늘 받기 때문이었다.
Walla는 자그만한 아가씨인데
뉴욕 시 소방관으로 일하는 남편 Will과 함께
우리 세탁소가 있는 동네에 살고 있다.
늘 워싱톤 dc로, 보스톤으로 출장을 다니며
아주 바쁘게 사는 티가 묻어난다.
한 여름에도 캐시미어 스웨터를 세탁소에 맡기는데
하루는 스웨터를 여름에 세탁소에 가져오는 까닭을 물었더니
자기 사무실이 너무 추워서
일할 때 스웨터를 꼭 껴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둘째 딸이 보스톤에서 대학을 다닐 때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보스톤이 너무 춥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Walla도 우리 둘째 나이 또래인데다가
똑 같이 추위를 잘 타는 것 같아
볼 때마다 우리 지영이를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끓어오르던 머리속을 식히고
담요를 살펴 보니 Wall와 Will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고
Rocky Mountain National Park Blanket이라는
상표도 붙어 있었다.
Rocky Mountain에 흰 오리털 눈이 내린 기분이 들었다.
아마 둘이서 그 곳에 여행을 갔다 산
추억이 깃든 일종의 기념품이었던 것이다.
Walla와 Will의 추억이 깃든 그 담요를
깨끗하게 손질해서 돌려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우리 둘 째가 아빠에게 부탁을 한 것 처럼 말이다.
누군가의 아빠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 비슷한 사람을 보면
가슴에 또 하나의 자식으로 품는 일이 아닐까?
Efren이 없어서
나는 오늘 아침도 일찍 세탁소에 나와
한 시간도 넘게 담요 위에 널린
오리털 눈을 아주 정성껏 치우고 있는 중이다.
박사 학위 공부에
직장 일, 그리고 개인 practice까지
하루 스물 네 시간이 모자라는
우리 둘 째를 생각하며 아빠 마음으로
정성되게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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