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밀라노까지
이번에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은 순전히 동서 때문이었다.
동서는 작년 9 월부터 올 6 월 말까지
이탈리아 북부도시 볼짜노라는 곳에 머무르고 있는데
볼짜노의 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뉴욕으로 돌아오기 전에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 잠정적으로 북부 이탈리아를 여행지로 꼽은 것이었다.
그러나 내게 문제(?)가 생겼다.
내가 자리를 비우기에는 세탁소가 너무 바빴다.
겨울 여행과 달리 6 월의 여행이 그리 맘이 편하지 않은 까닭이다.
여행을 떠나기까지 마음의 갈등이 칡넝쿨보다 더 엉켜 있었다.
아내의 어록에서 힘을 얻었다.
"인생 한 번 살지 두 번 살아?"
미리 싼 비행기를 사 논 터라 물릴 수도 없고 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가며
비록 완전하지는 못 해도
내 자리가 비는 세탁소의 공간을 대충 메꿀 수 있는 계략(?)도 세운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게 된 여행이었다.
뉴욕을 출발해서 일단 밀라노까지 가기로 했다.
거리가 큰 오차 없는 8 천 마일이나 되었다.
비행 시간도 거의 오차가 없는 여덟 시간이 걸렸다.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 출발한 비행기는 이내 밤을 맞았고
어둠 속을 여덟 시간을 날아 밀라노에 우릴 내려 놓았다.
밀라노에 가까이 왔다는 기장의 안내 방송에
비행기의 쉐이드를 올려 보니
햇살이 비행기의 이 곳 저 곳에 앉았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밤으로의 긴 여로 끝에 도착한 밀라노는 막 아침이 열리고 있었다.
공항의 입국 심사대는 별로 붐비지 않았다.
내 차례가 되어서 직원에게 내 여권을 내 밀었는데
그 젊은 청년은 내 여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듯이
세밀하게 검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여권이 위조된 흔적을 찾는 것 같았다.
보통 여권의 사진과 실물을 대충 훑고 나서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한 참 동안 내 여권을 이리 보고 저리 살피던 그 직원이
결국 말 문을 열었다.
"이탈리아에 처음이신가요?"
나는 5-6 년 전에 왔다 간 적이 있다고 대답하는데
갑자기 그 직원이 그리 세밀히 내 여권을 들여다 보는 이유가 설명이 되었다.
그 청년은 전에 이탈리아에 왔던 흔적을 내 여권에서 찾아내려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유효기간이 10 년인 내 여권은
작년에 새로 갱신을 해서 한국을 다녀 온 '신삥'이어서
한국 이외의 어떤 나라의 스탬프가 발견되지 않았다.
아직 경험이 미천한 까닭으로
이런 경우를 만나보지 못했던 것일까?
속으로 좀 불편하긴 했어도
이탈리아 사람들의 대충대충하는 행동방식에도 예외가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것은 나의 편견이었던 셈이다.
공항에서 밀라노 시내로 들어가는 기차를 타고
밀라노 시내의 중앙역에서 내렸다.
호텔까지 우버 택시를 타기로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뉴욕과 달리 우버도 별로 없는 데다가
아내의 전화기조차 제대로 신호가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밀라노로 출발하기 전에 아내에게
얼마라도 유로를 좀 바꿔서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아주 조심스럽게(?) 했다.
아내는 딱 한 마디 하셨는데
"세계 어디를 가도 크레딧 카드 한 장이면 안 되는 게 없어요."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기차표를 사야 하는데
아내의 크레딧 카드를 티켓 자동 판매기가 거부를 했다.
다행히 예비로 가지고 다니는 아내의 데빗 카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약간의 시간 지체도 있었고 불편함이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자신감이 어느 정도 손상을 입은 까닭 때문이다.
언제나 옳고 흠이 없는 아내의 말씀의 신뢰도가
조금은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는 깨소금 맛 때문이었다.
여행은 새로운 것과 만나며 갈등이 생기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새로움에 적응할 때 쯤이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불편함을 견디고 즐기는 과정이 여행인 것이다.
우리는 호텔이 있는 지하철 역에 내려서 무사히 호텔에 당도할 수 있었는데
체크인 시간이 훨씬 못 미치긴 했어도
호텔 측에서 빈 방을 내어 준 까닭에 그 동안의 여독을 잠시 풀 수 있었다.
아니면 여행 가방만 맡기고
햇볕이 강한 지중해의 날씨 속으로 내쳐져야 했을 것이다.
삶은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어그러져서 불편을 당하기도 하고
때론 행운을 만나기도 하는 법이다.
여행은 삶의 교훈을 넌지시 우리에게 건넨다.
밀라노 공항도 로마 공항과 다르지 않다.
비행기에서 내려 청사까지 버스로 이동을 했다.
공항에서 밀라노 시내까지 가는 기차표
16 유로였던 것 같다.
한 시간 쯤 걸린 것 같다
밀라노 역은 지상에서 층계를 두 번인가 오른 곳에 있는데
플랫폼이 거의 스무 군데나 되었다
모두 천장 하나 밑에 있다.
그러니 역사가 거대하다고 느껴졌다.
비키니 수영복의 저 모델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볼 수 있다.
밀라노 역 앞의 조형물
사과인데 수술한 것 같은 모양.
그러고 보니 사과가 심장의 모습을 닮았다.
호텔의 엘리베이터.
흔히 내가 생각하는 2층이 이탈리아(유럽)에서는 1 층이다.
로비가 있는 곳은 0 층.
미국의 호텔(빌딩)에는 대개 13 층이 없고
한국에서는 4 층이 없다.
생각과 문화가 만들어 내는 차이.
밖으로 가기 위해 1 층을 눌렀다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채고
다시 0층을 누르는 시행착오를 거쳐
비로소 이해를 한 엘리베이터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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