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의 두오모
누가 그랬던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피렌체처럼
밀라노에서도 모든 길은 두오모로 통했다.
두오모와 두오모 앞으의 너른 광장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처럼 길이 나 있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으로 4통 8달이란 말이
이 곳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였다.
어느 길을 따라가도
대충 방향을 잡으면 이르게 되는 곳이
밀라노에서는 두오모와 그 앞 광장이었다.
따라서 길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골목길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근처의 어느 학교(대학?)를 한 바퀴 둘러
대충 방향을 잡고 걸었더니
이내 성당의 뽀족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렌즈로는
성당 전체를 다 담기에 무리가 있을 정도로 컸다.
모든 길이 두오모로 통할 수 있도록 도시의 형태가 설계되었다는 것은
신과 교회가 중심이었던 중세에 성당의 건축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이탈리아에서 제일 크고
세계적으로도 한 손의 손가락으로도 충분히 크다는 밀라노의 두오모는
그 규모만으로도 엄청났다.
내가 가지고 있던 24 mm렌즈 안에 담기에 무리가 있을 정도였다.
줄을 서야 한다는 말에 성당 안과 꼭대기에 오르는 일은 포기했다.
수 많은 시간을 통해 설계되고 시공된 건축물을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이해하고 감상한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신학자가 말했다.
(칼 라너라고 기억하는데 팩트 첵크가 필요하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라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은 내 입에서 '와!'하는 감탄사를
어떤 제어도 받지 않고 내어 놓게 했다.
그러나 건물 자체는 막 들렸던 골목길에서 만났던
노인 부부처럼 내 마음을 촉촉하게 해주지는 못 했다.
교회가 되었든 집이 되었든,
거기에 깃들어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의 사랑과 유대가 정작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려는 즈음
배우 송중기와 송혜교의 이혼 소송이 들려왔다.
명망이 높은 두 배우의 결혼식은
어떤 신혼부부의 그것과 비교해 결코 뒤질 수 없이 훌륭하고 호화로웠을 것이다.
그들이 신혼의 보금자리였던 집 또한
보통 사람들은
감히 마음조차 먹을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내 짐작일 뿐, 팩트 체크가 필요한 부분)
그러나 그들 부부가 한 지붕 안에서 겪어야 했던
최근의 시간들은 어떤 종류의 것이었을까?
내가 굳이 성당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다른 건물보다 월씬 키가 큰 까닭에
어디에서나 뾰족탑이 보인다.
두오모 건물 한 켠에 우리 나라 기업 삼성이
두오모 보수에 돈을 보탰다는 광고 문구가 붙어 있다.
인류 문화재 보수 유지에 헌신하는 기업 이미지 제고.
10 여 년을 끌고 나서야
자기 기업의 노동자 사망 원인이 회사 측에 있음을
마지 못해 인정하는 기업의 두 얼굴.
그 문구를 그리 자랑스럽거나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만은 없었던 까닭이다.
분명히 예수의 다리를 만지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속설이 있을 것이다.
두오모 문의 청동 조각의 예수 다리가 저리 반짝거리는 걸 보면----
종교와 미신이 동거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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