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뒷골목에서 밀양(密陽)을 만나다
아내와 나는 호텔을 나와
두오모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두오모까지는 보통 걸음으로 25 분 정도 걸린다고
구글이 알려 주었다.
두오모 같이 유명한 건물은 밀라노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빼놓지 않고 들리는 곳이다.
그러나 뒷골목은 모든 여행객이 다 들리지는 않는다.
아니, 대부분의 여행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보여지는 것을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않는 풍경,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뒷 골목이다.
두오모로 가다가 길 건너에 보이는 날고 허물어져 가는 성당의 모습,
그 모퉁이에 길이 있는데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고 가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두오모보다는 내 흥미와 눈길을 더 끄는 곳.
그 곳의 풍경.
가식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삶이 있는 곳.
나는 그 골목에서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생명을 잃은 듯 세워진 두 자전거 사이에
생명력을 가진 움직이는 자전거를 찍고 싶었던 것이다.
골목이 그냥 죽어 있는 곳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삶의 현장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 한 쌍이 이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분들의 걸음 속도는
그 분들의 나이만큼, 세월처럼 그렇게 더뎠다.
몇 대의 자전거가 지나갔다.
나는 계속 기다렸다.
두 분이 내 곁을 지나가며 말을 건넸다.
눈치로 해석을 했는데
자신들의 걸음이 너무 느려서
내가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 것 같아 미안하다는 어조였다.
미안하고 죄송한 것은
시간이었고
나였다.
숨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로 붐벼도 껍데기 뿐인 두오모에 내려 앉는 햇살의 무게보다도
이 골목길에 내려 앉는 햇살이 아주 다정스러웠다.
마치 영화 밀양의 마지막 장면처럼
어둡고 후미진 곳에 비밀스럽게 내려 앉는 햇살의 무게.
밀양이 바로 밀라노의 어느 뒷골목에도 있음을---
호텔을 나와 두오모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자동차 딜러.
피아트.
이탈리아 땅에 서 있음이 느껴졌다.
두오모로 가는 트램.
날고 허물어져 가는 성당.
움직이지 않는 두 대의 자전거
그 사이를 달리는 자전거.
골목은 살아 있다.
후미진 곳에 찾아드는 비밀스런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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