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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기

어머니날 일기 - 새벽

토요일 저녁에 집에 들어와 하룻밤을 자고

눈을 뜨니 새벽 다섯 시 반,

주중에는 부르클린에서 살다보니

오히려 집에 돌아오면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처럼

늘 잠을 설친다.

 

어머니날이다.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눈물이 흐르는 사람이 있다.

내가 지상에서 가장 부러워 하는 사람들 중 한 부류다.

어머니와의 사랑, 그 교감, 그리고 추억.

어머니가 이승에 없어도 그 추억으로 마음이 아려지고 또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난 참으로 부럽다.

 

날이 찌뿌둥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섰다.

축구를 시작하기까진 시간이 좀 있으니 Piermont로 향했다.

 

Piermont- 내 마음의 고향으로 정한 곳.

그냥 내가 정해버렸다, 내 고향으로.

갈대가 있고, 속 깊은 강물이 흐르는 곳.

외롭다고 느껴질 때면

갈대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으러 가는 곳,

그리고 깊은 강물 소리를 들으러 가는 곳,

그래서 헤르만 헷세의 소설의 주인공인 싯달타를 흉내내는 곳.

 

 

 

 

구름이 가볍게 하늘을 덮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해가 얼굴을 내밀어 보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었다.

여명.

빛과 어둠 그 사이.

아침이 그 어딘가에서 시작해서

전선줄을 타고 이동하는 것은 아닐까.

 

새벽과 아침 사이에 존재하는 그 긴장감이 난 좋다.

남 모른는 비밀을 숨어보는 듯한 그런 긴장감이.

 

 

 

 

Pier로 가는 길 양쪽엔 갈대의 새순이 돋아 자라고 있었다.

그 뒤엔 마른 갈대가 서걱이고--------

어둠이 빛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시간,

묵은 갈대는 새로이 자라나는 어린 갈대에 밀려 뒤로 물러났다.

 

축구를 하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그리고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나도 마른 갈대와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의 시간이 점점 말라가고 있다는------

내가 비켜나야 새로운 갈대가 자랄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조금씩 아파지는 나이가 되었다.

 

 

 

 

오래 전에 베어 넘어진 나무 속에서

새 싹이 돋았다.

소멸하고 사라지며 새로운 싹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되어주는 일.

아 ,이 지상의

어머니, 어머니들.

 

 

 

 

 

 

 

 

 

 

나올듯 나올듯 나오지 않는 저 해를 보며

미처 나오지 못한 재채기처럼 아쉽고 조바심이 났다.

 우중충하고 어두운 tone이긴 하지만 Andante의 속도로 

Piermont의 아침이 오고 있었다.

 

 

 

 

멀리 Tapan Zee Bridge가 눈에 들어온다.

 

다리, 그래 바로 그 다리.

강 위에 몸을 눕히고

수 많은 차량들을 제 몸을 밟고 강을 건너게 해주는 다리.

 

아, 어머니.

 

 

 

 

이른 새벽  Pier까지 산책 나왔던 사슴 한 마리가

청소트럭 소리에 놀라 그만 강 속으로 풍덩.

어쩌나 했는데 수영을 참 잘한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멀리까지 헤엄을 처 간 뒤라

제대로 사진을 찍진 못했다.

유유히 헤엄을 쳐서 강가의 갈대밭까지 잘 갔다.

사슴이 지나간 강 물 위 에

아침 햇살이 내려와 물들었다.

 

내 지나는 자리엔

어떤 색으로 물이 들을까?

 

 

 

 

 

 

강쪽으로 난 Pier를 향해 걷다보니

해가 좀 나는 듯 싶어서

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햇살이 강변에 늘어선 갈대의 머리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부서지는 햇살.

 

 

다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강변의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뜬 사람들이

머지 않아 커피며, 신문이며 베이글  같은 것을 사러

나올 것이다.

그러면 이 강마을은 활기를 찾으며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구름 사이로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따라 해가 나오는 것이

왜 해산하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걸까.

 

 

 

 

몇 마리 새가 벌써 일어나 아침을 맞고 있다.

저 새들에게도 희망이라는 것이 있을까?

나는 이 새벽에 왜 이 곳에 있는 걸까.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자들의 명제에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저 이 곳, 

Piermont에서 아침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물 속의 수초들도 기지개를 켠다.

그래서인지

작은 파문이 인다.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는 일.

 

살아가는 일의 시작.

부활의 신호인 것이다.

 

부활에 소리가 있다면 아마도 '찰랑찰랑'이 아닐까?

 

찰랑찰랑, 강물에 아침이 오고 있다.

 

 

 

 

 

 

 

 

아주 순하디 순한 파도가 강가까지 밀려 왔다 사그러든다

 

강이나 바다의 그리움.

그 육지를 향한 그리움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시지프스처럼 오늘도 그리움의 바위 굴리기를 멈추지 않는 물.

 

육지에 닿는 순간 물거품이 되는

물의 뭍에 대한

 

그리움.

 

형벌치고 이렇게 처절한 형벌이 또 있을까.

저 흰 거품은 그리움이 죽어 남긴 뼛가루 같다.

 

 

 

 

 

 

 

오리 한 쌍.

수컷이 앞장 서고 암컷이 뒤를 따른다.

둘, 둘이서 그렇게------

 

살아가는 일이 돌연 슬프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 -아 -가 -는- 일-이------

 

 

 

 

 

 

 

 

 

 

 

 

물 가의 갈대가 강물을 푸르게 물들였다.

누군가 때문에 가슴에 초록물이 들던 때도 있었다.

책 한 줄, 영화의 한 장면, 시 한 줄에

무슨 색으로든 물이 들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나에게도.

 

나는 지금 어떨까?

초록물이 들 수 있을까?

 

 

 

마른 갈대 위에 까만 새가 한 마리 앉았다.

저 새의 무게.

저렇게 마른 갈대 위에 사뿐히 내려 앉을 수 있는 저 새의 무게.

 

아마도 사랑 많은 어머니의 무게가 저럴 것이다.

모든 걸 다 내어주고

오직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만 간직한 어머니의 무게.

때론 생명까지 내어던지는 어마니의

무게.

언젠가 이승을 떠니 저승으로 향하는 어머니는

저 새처럼 그렇게 가볍게 날 아 오를 것이다.

 

 

 

 

길과 풀섶의 그 경계에 민들레 꽃씨가 

목화솜처럼 모여 있다.

민들레 홀씨.

솜.

다 비우고 난 후의

존재의 가벼움.

 

나도 그럴까,

존재의 가벼움, 가벼움.

 

 

 

 

 

 

 

 

참새 한마리.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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