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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기

Memorial Day - 키 작아져서 행복했던 날의 일기

 

오늘은 메모리얼 데이.

한국의 '현충일' 같은 날이지만

꼭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이들만 기리는 것은 아니다.

동네를 위해 일하다 숨진 경찰관이나 소방관까지도

기억한다.

타운별로 기념탑이나 공원에 모여 행사와 함께

퍼레이드도 한다.

그야말로 동네 한 바퀴.

우리 타운 (Harrington Park)의 경찰서, 소방서, 그리고 의료 봉사대와 학교의 밴드,

그리고 정원 가꾸기 모임, 등등이 참여한다.

소방서의 검은 점박이 개도 등장해서

꼬마들에게는 제법 눈요기 감이 되고도 남는다.

퍼레이드가 끝나면

퍼레이드에 참여한 아이들에게

아이스 크림이 제공된다.

9명인가 되는 경찰 빼고는 거의 다가 자원 봉사팀이다.

우리 타운의 Mayor, 뭐라 해야  좋을까,

시장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읍장님도 무보수 자원봉사한다.

본 직업은 변호사인데

내가 1993년도에 이사왔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Mayor직을 수행하고 있다.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무소속인데 동네 사람들은 늘 그에게 투표를 하고----

적어도 우리 동네엔 정치라는 것이 이슈가 되진 않는 것 같다.

너무 평화로운 마을,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멀리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우리 동네, Harrington Park.

동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그런 동네에

난 살고 있다.

 

아침엔 아내와 미사를 마치고

친구 부부와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Nyack이라고 하는 아주 오래된 강마을이다.

뉴욕 쪽에서 Tapan Zee 다리를 건너오다 보면

왼 쪽이 Piermont, 오른 쪽이 Nyack이다.

1800년 대 말 쯤에 지어진 대저택들이 있는 곳,

아주 오래된 책방이며 볼거리가 있는 곳,

길이 좁아 차도 사랍도 어깨를 춤추려야 지나다닐 수 있는 곳.

거기에 있는 프랑스식 베이커리에 갔다.

친구부부와는 지난 1월에 함께 파리에 다녀왔다.

그래서 일부러 이 곳을 찾았다.

어는 시간, 어느 곳에 관한 기억을

그 부부와 함께 나누어 갖고 있다.

 

바께트가 참 맛이 있다.

 

아침 식사가 길어졌다.

아니 수다가 길어뎠다.

 

인생, 그리 심각할 일만은 아니다.

때로 의미 없이 웃고 떠드는 일도 가치가 있다.

 

십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메모리얼 데이 퍼레이드에 가려면

서둘어야 했다.

조카들 퍼레이드 하는 모습을

찍으려 했는데 너무 늦은 게 아닌 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타운에서도 길을 막고

교통을 통제하는 모습이 보였다.

길거리에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오징어 바베큐 준비를 하는 아내를 집에 내려주고

서둘러 Harrington Park School로 갔다.

그런데 너무나 고요한 것이 아닌가.

 

무언가 잘못 되었다.

 

학교 앞 집 뜰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다른 타운은 11시에나 시작하는데

우리 타운은 9시에 시작해서 벌써 끝났다는 것이다.

망연자실.

공연히 학교 주변 집 뜰에 핀 꽃에

렌즈를 들이댔다.

 

 

 

 

 

햇살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시간.

웬만해서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사진이 밋밋해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집 현관으로 오르눈 계단 초입에

자라는 돋나물이 여기도 있었네.

 

새싹인지 아니면

꽃인지, 연두색이 구석에서 빛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계실 때는 우리집에서 자라는

돋나물로 물김치를 담그셨는데-----

 

이 더운날, 얼음 둥둥 뜬

돋나물 물김치 맛이 그립다.

 

어머니는 더운 날에

돋나물 물김치의 그 시원한 기억으로 다시 살아나신다.

 

 

 

Harrington Park 성당 (Our Lady of Victory)

아주 작은 성당이다.

올 해가 백주년.

그 동안 작은 수리만 했지

한국에서처럼 크게 다시 짓거나 하지 않고

옛모습을 지켜오고 있다.

다른 미국 성당과는 달리 자꾸 신자가 늘어서

올 해는 증축을 시작할 모양이다.

 

한가로운 낮 구름.

 

 

 

 

 

앞뜰에 이 집 식구들이 나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방학을 하고, 졸업을 한 대학생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메모리얼 데이  연휴는

가족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휴일 중 하나이다.

너무나 소중한 가족들과의 하루, 혹은 이틀의 시간.

그 소중함을 위해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

열심히 살며 사랑하는 일이다.

그들의 희생으로 얻은 자유와 평화를 맘껏

즐기는 일이다.

 

그래서 메모리얼 데이는 바베큐 데이이기도 하다.

고기를 태워 연기는 하늘로 보내고

고기는 우리가 먹는 번제 의식.

(오로지 내 생각일 뿐)

 

 

 

 

길에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라곤

나비,

나비의 날갯짓.

 

 

 

 

 

이름 모르는 꽃,

사실 모르는 꽃이름이 훨씬 더 많다,

아니 거의 다 모른다고 해야 더 맞는다.

이 대목에서 꽃들에게 참 미안하다.

그리고 내가 외우지 못하는 이름들에 애해서도

참회를 해야 한다.

 

이름은 혼이며 존재이다.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헛되이 부른

이름에 대해서도 참회 한다.

 

누군가를 부를 때는

내 혼을 다 해서 불러야 함을,

그래야 이름을 불리는 존재도 온전히 나에게 다가옴을-----

그래서 일치할 수 있음을---

 

 

아, 나라는 존재는 왜 이리 철이 늦게 드는 것인지.

 

 

 

 

 

 

누군가 집 밖 나무에

꽃이 심어져 있는 hanging Basket 걸어 놓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

나만 보지 않고

길 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마음,

이런 마음들이 모이면 세상은 풍요로와진다.

 

저 꽃이 집안에 있다면

한 사람의 꽃이지만

길거리에 나앉은 저 꽃은

나의 꽃, 그대의 꽃, 그리고 길 가는 모든 사람들의

꽃이 된다.

하나의 존재가

모두를 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나가 열이 되고 백이 되고 천이 되는

셈법.

나눔과 사랑의 셈법.

 

 

 

 

 

걸어다니며 동네 모습을 찍을까도 생각했지만

날이 너무 더웠고 무엇보다도 햇살이 사진 찍기엔 좀 그래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

그래도 그냥 집에 들어가기도 그래서

우리집에서 걸어서 3-4분이면 가는 곳에

위치한 Pondside Park에 들렸다.

들꽃들이 하늘거리며 손짓을 했다.

 

"미안, 내가 네 이름을 몰라."

 

꽃은 오히려 담담한데

 

내 얼굴이 붉어졌다.

 

 

 

 

 

 

 

 

 

누군가가 한가로이 낚시를 하고 있다.

나는 못에 비치는 잔디의 녹색 그림자를 보면

늘 가슴이 뛴다.

꼭 사진으로 찍어보고 싶은데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저 긴 녹색의 띠를 바라보면

신장 투석을 한 사람의 피처럼

내 피도 저 녹색처럼 푸르고 신선해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아, 녹색, 어머니의 색.

 

 

 

 

 

 

 

 

 

 

 

 

 

 

이 길을 따라가면 야구장이 있다.

여름이면 숲이 우거져

햇살이 들지 않는다.

저 숲 속, 밤이면 내가 알지 못하는 동화의 세계가

시작되는 곳,

해가 뜨면 그 세계는 서서히 사라지는----

숲은 내게 그런 동화적 존재이다.

 

 

 

 

 

 

 

 

저 초록,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저 초록의

 

 

 

무심한 풀꽃

 

바람이 불면

흔들리면서 조용히 눕는다,

바람이 그치면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면 그 뿐.

 

바람이 불면 꼿꼿이 서 있는 다, 나는.

그래서 늘 바람에게 진다.

 

잘 눕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저 풀꽃에게서.

 

곧 스러질 흰 구름도 가던 길 멈추고

 못 속에 잠시 몸을 담구었다.

 

 

 

 

 

못 속에 민들레 꽃씨가 나풀거리며 떨어진다.

낙하산 부대의 병사들이 떨어지는 것 같다.

 

5월에 내리는 눈

 

민들레 꽃씨

어디서 날아와 저리도 함박눈스럽게 내리는 것인지

 

 

 

 

 

 

 

 

 

 

 

 

 

그러고 보니 움직이는 것이 또 있네.

오리 가족의 한가로운 오후.

움직이는 것이 있어서 더 한가하게 느껴지는

오후의 연못.

 

 

 

 

 

 

 

 

 

 

 

 

 

 

 

 

 

 

 

 

 

 

 

 

공원을 나오려는데 눈에 들어온 노란 풀꽃들.

한 뼘도 되지 않는 노란 꽃들.

 

배를 깔고 납작 엎드려서야 비로소

눈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몸을, 그리고 눈을 낮추어야 

비로소 보이고 들리는 존재, 그리고 세상.

 

몸을 낮추어야 보이는 세상이 있다면, 

그리고 그 세상이  아름답고 풍요롭다면,

나는 그리 하리라.

 

그냥 지나친다면

그것은 보아도 본 것이 아님을.

 

배를 깔고 엎드려서야 만난 만남.

 

 

 

 

집에 돌아오니 현관 앞의 다육이들도

'Hi!' 하며 나를 밎는다.

아, 귀여운 것들.

 

무릎을 꿇고

때론 엎드려서

키를 낮춘 후에야 만날 수 있는 귀여운 것들.

세상엔 내 키를 낮추고 바라보면

아름답고 귀여운 것들이 참 많다.

 

작고 귀여운 것들과 만나고 와선

나도 작고 귀여워진 것 같아

배시시 웃음이 터지는

5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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