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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기

봄날 사랑에 빠지다.

 

 

 

라일락 향기가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오랜만에 우리집 뜰을 둘러보았습니다.

텃밭 주위로 라일락이 한창입니다.

그리고 철쭉도 할짝 피었습니다.

 

 

 

우리 타운의 상징나무의 이파리에 해가 비칩니다.

실핏줄 같은 잎맥이 보입니다.

얼마나 물을 잘 빨아들이는지 아침 저녁으로

잎의 크기와 색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집에 같이 살고 있는 처남네 막내 딸 영채.

사진을 찍어준다니

선글라스에 핸드백까지 메고 나와

한껏 폼을 집습니다.

나뭇잎처럼 푸르기만한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영채는

푸르기만한 시간을------

 

 

 

 

 

 

 

 

 

 

 

 

 

 

 

 

텃밭 주위엔 라일락이 한창입니다.

마침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꽃에 앉았숩니다.

꽃과 나비가 있는 봄날의 풍경.

 

그럴듯한 사진이 될 수도 있었는데

처음에 카메라 setting을 잘못했습니다.

안경을 끼지 않고 대충 white Balance를 맞추었는데

나중에 보니 잘 못 맞추었습니다.

그래서 사진이 다 우중충한 빛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내가 보내고 있는 시간은

영채의 그것과는 영 다른 빛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의 시간은 회색이 아닐까'

초록빛 시간과 회색빛 시간 사이의

그 멀고도 깊은 골.

 

아마도 나는 영채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랑을 하지 못할 것 같은

우울한 생각에 젖었습니다.

 

 

 

 

 

 

라일락의 꽃말은 '젊은 날의 추억'입니다.

연보랏빛 꽃잎에 달콤한 향기를 가진 라일락 꽃과

꽃말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일락은 내가 좋아하는 꽃입니다.

꽃보다도 그 향기가 더 아릅답습니다.

 

지금은 주말에만 집에 들어가기에

그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지만,

집에서 출퇴근 하던 시절, 라일락이 필 때면

라일락 향기가 우리집 주위을 솔솔 날아다니곤 했습니다.

새벽에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서면

꽃은 보이지 않아도

라일락의 향기가 나를 반깁니다.

그러니 새벽 출근길에 현관문 손잡이를 돌릴 때면

은근히 흥분이 되곤 합니다.

라일락 꽃향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얼굴에 번지고

그런 행복감에 취해 하루가 즐겁던 시간.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자신이 가진 향기로 남을 행복하게해주는

라일락 같은 사람,

라일락 같은 사랑.

 

그래서 라일락은 '꽃보다 향기'입니다

꽃은 담장을 넘지 못해도

향기는 담장을 넘어 그 기쁨을 전합니다.

 

 

 

 

 

 

아직 일구지 못한 텃밭엔

민들레 꽃이 지고 난 후

 홑씨가 남아 있습니다.

꽃은 져도

생명은 남아 있습니다.

바람에 실려 여기저기로 흩어질 저 씨앗들.

이해인 수녀님의 '민들레의 영토'가 생각납니다.

민들레의 영토는

눈에 보이는 이 곳만이 아닐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먼 곳까지가 민들레의 영토입니다.

꽃이 지고서야 비로소 넓어지는 영토.

 

나도 민들레처럼 살 수 있을까,

아니 민들레처럼 죽을 수 있을까-----

 

 

 

텃밭에 퍼진 이 보라색 풀꽃들.

너무나 하찮아서 눈길조차 제대로 가질 않습니다.

유안진 시인의 시에서처럼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시는' 가 봅니다.

 

처다보지 않아도 제 자리에서

참으로 소박하고 겸손하게 피어난 이 풀꽃들.

 

 눈길 뿐 아니라

귀도 기울였습니다.

 

사랑스럽습니다.

 

 

 

잎을 하나 따서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습니다.

아,

민트 향기가 났습니다.

초록색 민트 향기에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꽃,

작은 이파리에 숨겨져 있는

 치유의 신비입니다.

 

오늘은 내 혈관 속에

민트 향기나는

초록색 피가 흐르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해지는 느낌,

이것이 사랑이겠지요, 아마도.

 

나 ,

이 봄에 사랑 렛슨을 받고 있습니다.

작은 풀꽃이 보내는 눈인사를 통해서 말이지요.

 

 

 

 

 

가만히 꽃을 들여다 보면서

잔잔한 기쁨을 느낍니다.

 

 

 

현관으로 오르는 계단에

장미꽃 봉오리가 부풀었습니다.

재작년인가 심었는데

얼마나 잘 자라는지 이젠 계단을 오를 때

가시를 조심해야할 정도입니다.

여름 내내 수많은 꽃이 피고 지고 할 것입니다.

피고 또 지고-------

그러면서 장미의 시간이 가고

나의 시간도 흘러가겠지요.

 

꽃처럼 허무한 존재가 또 있을까?

한 순간 아름답지만 지고 나면 그 뿐.

 

이런 생각들이 만들어내는 감상 때문에

사랑하는 일에는 늘 미숙한 초보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말이지요.

 

 

 

Japanese Maple입니다.

어느새 잎이 무성해져서

나무 밑에 들어가면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Japanese Maple에도 꽃이 피는 겁니다.

매년 이 나무를. 그리고 잎들을 거의 스무해 동안 보아왔어도

꽃을 본 건 이 번이 처음입니다.

눈으로만 보았지

마음을 주며 본 것은

정말 처음입니다.

 

가만히

그리고 천천히 들여다 보면

신기한 것 천지입니다, 자연은.

그리고 사랑스럽습니다.

 

누군가, 아니면

무엇인가와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내면 보낸 만큼

더욱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나무의 꽃을 발견하고는

난 이 나무와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정원사로부터 우리 집의  Japanese Maple나무의 가격이

약 1만 달러가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전혀 마음이 뛰질 않았습니다.

너무 바쁘게 사느라 눈길 줄 여유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젠 그 비싼 가격 때문이 아니라

그 나무 자체의 사랑스러움 때문에 사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난 이 나무 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바람결에 들리는 나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 밑에서

한 철 보낼 생각을 하니

배시시 터지는 미소를 감출 수 없습니다.

 

이 봄에 난 다시 새롭게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늘 삶에 따라다니는 고통. 근심, 이런 것들 때문에

진정 사랑을 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시간들.

나를 얽어매는 그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나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거짓된 믿음과 이별하고

이 봄에는 다시금 사랑에 빠지고 싶습니다.

 

사랑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 앞의 일인 것을----

 

'Carpe Diem'

 

Dead Poet's Society를 보면서

Keating선생이 했던 말을 그냥 귓전으로 흘렸는데

오늘은 내 가슴 속으로

맞아들였습니다.

 

나의 회색빛 시간도

귀여운 조카 영채의 시간처럼

초록빛으로 물들면 좋겠습니다.

 

내 눈 앞의 것들, 그리고 사람들을,

내게 익숙해서 이젠 무심히 지나처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사랑해야겠습니다.

 

이 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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