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날 일기
5 월 두 번 째 일요일.
미국의 어머니 날이다.
그런데 우리집 최고 존엄이자
이 날의 주인공이 목요일 오후부터 앓아 누웠다.
그러니 어머니 날이 우중충해졌다.
주인공이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데다가
토요일 밤부터 내리던 비가
일요일 아침부터는 더 드세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소식 때문에 토요일부터
새벽 축구를 포기했기에
아침 시간이 비었다.
토요일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아내를 위해
콩나물 시금치 된장국을 (맛나게) 끓였다.
밥도 아내를 위해 아주 질게 해서 놓고
나는 아파트를 나와
세탁소로 향했다.
지난 주일 내내 빨래가 밀려서
어느 정도 내가 일을 해두면
앞에 둔 한 주일 동안은
아무래도 여유 있게 세탁소가 돌아갈 것 같았다.
금요일에 결혼식 리허설,
그리고 토요일 결혼식 때문에
내가 자리를 비워야 하기에
집에 있느니 세탁소에 가서 미리 일을 해 두면
마음의 짐이 조금은 덜어 질 것 같다는 계산이 섰던 이유에서다.
두어 시간 집중해서 빨래를 했다.
물론 일로서 노동을 했지만
한 주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지는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시금치 된장국에
밥을 말아서 먹고는
아픈 몸은 몰라도 얼마간 정신은 차린 것 같았다.
어머니.
밥을 해서 먹이고
깨끗하게 빨래를 한 옷으로 아이들에게
매일 새롭게 성장하는 힘을 주는 존재.
희생과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무식한 사랑으로
세상을 성장하게하는 동력을 제공하는 존재 - 어머니
나는 아침 세 시간 동안
어머니의 역할을 해 본 셈이었다.
물론 보람이 있었고
기분도 좋았다.
그러나 평생 같은 일을 하라면?
아마 못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께서는
아무래도 더 맹목적이고
더 질기고
더 잘 참아내는
여성에게 어머니 역할을 맡기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셋째 딸 선영이 아파트에서
선영이가 준비한 브런치를 먹으며
우리 식구 역사상 가장
조촐한 어머니 날을 보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비엔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
아주 호기심 나는 lp 판이다.
돌아오는 아버지 날 선물로
콕 찝어서 알려 주었다.
대학교 2 학년 때 니체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다.
그 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 하였다.'는
내게 바이블이었다.
초인(위버멘슈)가 되기 위해 두어 달 용맹정진한 적도 있다.
클리블랜드에 연주하러 가 있는
막내 아들의 전화.
장미 꽃잎이 흩뿌려진 케익은
아내가 주문한 것을 셋 째가 찾아 온 것이다.
자기가 축하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누어 주기 위한 용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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