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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세탁소에서 생긴 일 - 선물

 

 

 

 

세탁소에서 생긴 일 - 선물

 

어제 세탁소에 반가운 손님이 왔다.

P였다.

어릴 때는 부모님 심부름 때문에 세탁소를 드나들었고

해병대 복무 후에는 

뉴욕시 경찰에 투신해서 지금까지 근무를 하고 있는데

이제는 자신의 옷을 세탁하기 위해 우리 세탁소에 오는

아주 오래된 단골이다.

 

P는 어제 옷을 맡기면서

카드를 한 장 내밀었다.

자신이 소속된 뉴욕시 경찰국의 Detective 공제회 카드였다.

 

내가 알기로 뉴욕 경찰들은 직급에 따른 공제회 같은 것이 있는데

거기 가입한 사람들은 

연초에 신용카드 크기의  공제회 카드를 

자신의 친지들에게 선물한다.

 

이 카드를 소지한 사람은 

뉴욕 경찰과 어떤 식으로든

연이 있다는 걸 뜻한다.

 

심각한 수준의 범죄가 아닌,

사소한 교통 위반으로 경찰의 단속을 받았을 때,

면허증과 함께 은밀하게 이 카드를 내밀었더니

다음부터는 조심하라는 따뜻한 인사말과 함께

쉽사리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영웅담을

주위에서 질리도록 들었다.

 

P는 나에게 매 해 이 카드를 선물하는데

어제는 카드에다가 뉴욕 경찰을 상징하는 문양이 들어간

열쇠고리까지 얹어서 내게 건네주었다.

카드 뒷 면에는 카드의 소유자가 자신의 절친이니 

친절하게 도와 주라는 메모와 함께 근무처와 전화번호까지 적어 넣었다.

 

사실 나는 그런 카드를 쓸 일이 (거의) 없는 모범 운전자이다.

십수 년 동안 신호 위반이나 사고의 기록(Record- 많은 경우 전과)이 없다.

무결점의 빛나는 기록의 운전자인 까닭에

P가 준 카드는 내 지갑 속 운전 면허증 밑에서

새 카드를 건네받을 때까지 

빛을 볼 일도 없고 잊힌 채로 머물 것이다.

 

단 한 번 그 카드가 빛을 본 적이 있긴 하다.

작년에 지인들과

국립공원에 들어갈 때였을 것이다.

 

면허증과 함께 공원 패스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패스 대신 실수로 경찰 공제회 카드를 꺼냈을 때 빼고는

카드를 꺼낸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 카드를 쓸 일이 없긴 하지만

여행 떠나며

지갑을 현찰로 가득 채우고

신용 카드 한 장 더 넣었을 때처럼

편안하고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 카드는 빛을 보지 못 한 채

한 해 동안 내 지갑 속에 꼭 갇혀 있을 것이고

그러면 좋을 것이다.

 

진정한 선물은 비록 그것을 사용하지 않아도

가슴 뿌듯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지갑을 내 주머니에 넣고 꺼낼 때마다

나는 P가 나에게 보여주는 우정의 마음을 떠 올릴 것이다.

비록 그 카드는 보이지 않지만

P 뿐 아니라 내가 사랑과 우정의 선물을 받으면서도

잊고 사는 이들을 떠 올리려 노력할 것이다.

 

나는 새삼스레 오늘 아침

P가 준 카드를 다시 꺼내 보고 있다.

 

그리고 지갑 속에 현찰도 있고

신용 카드도 두 장이나 있으면서도

누군가에게 마음 뿌듯한 선물 하나 줄 줄 모르는'

내 빈약한 마음을 반성하고 있는 중이다.

https://blog.daum.net/hakseonkim1561/2134#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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