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 이인삼각
"우리 지금 영화 보러 갈까요?"
환갑을 넘겼거나 아니면 그 언저리 나이의 사람들이
밤 열 시 가까운 시간에 심야 영화를 보러 간다는 건
아무래도 정상 수치에서 조금은 벗어난 행동 양식이라는 게
나같은 보통 사람의 생각일 것이다.
환갑 넘은 사람들은 밤이 깊었다고 해서
영화관에 가지 말라는 법도 없거니와
심야 영화를 본다고 해서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한
뭐 그리 대수로울 것도 아닐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젊은이들만 득실거리는 커피집에 모여 앉은
우리 일행 여섯 중 누군가의 입에서
뜬금없이 영화를 보러 가자는 말이 튀어나온 건
아무래도 나의 상상력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밤 열 시 가까이 된 시각에 우리 여섯이
커피집에 앉아 커피와 젤라또를 먹으며
노닥거리는 것 자체가 기이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젊은이들에게 포위된 형상이었다.
더구나 바로 옆에 앉았던 젊은이는
두꺼운 책과 노트북 컴퓨터를 열어 놓고
그야말로 열공 중이었던 까닭으로
우리의 출현이 그에게는 반가울 턱이 없었을 것이다.
하기야 그런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자유인 것처럼
우리가 커피와 젤라또를 먹으며
정담을 나누는 것 또한 자유일 것이긴 하나
우리의 숫적 열세는
아무래도 우리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 여섯은
나와 내 고등학교 동기 둘,
그리고 그들의 아내를 함한 수치이다.
우리는 친구인 JH의 짜장면 집 번개에 기꺼이 응답해서
맛 있는 중국 요리와 짜장면으로 벼락을 맞은 후'
커피집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뜬금없이 영화를 보러 가자는 제안을 받은 것이었다.
영화 '극한직업'을 보았다는 JH 부부 때문에'
그 사단이 난 것이다.
JH 부부는 문제의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았는데
초저녁 잠이 많은 그의 아내는
영화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곯아 떨어졌다고 한다.
하기야 요즘 영화관은 누워서 볼 수가 있으니
그럴만도 했다.
JH의 아내는 자기가 자는 바람에 영화를 볼 수 없었으니
영화를 본 사실 자체를 무효화하고
영화를 다시 보자고
우리 일행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도발을 한 것이었다.
일수불퇴의 원칙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한 번 본 영화를
그 기억이 지워지기도 전에 돈을 내고 다시 본다는 건
내 기준으로는 웬만한 경우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야심한 시간에 영화를 보러 가느니 마느니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이성을 되찾고
후일에 거사를 도모하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어제 일요일이었다.
어제는 여섯이서 Bayside의 Dimsum 전문 식당에서
거하게 브런치를 먹었는데
JB의 아내가 쏘았다.
그리고 영화 시작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어제의 메인 이벤트인 영화, 극한직업을 보았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소문난 잔치에 불과했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잠깐 졸았는데
지난 번과 달리 이 번에는 친구 JH는 내리 잠을 잤고
그의 아내는 끝까지 졸지 않고
야무지게 다 보았다고 했다.
결국 JH의 통 큰 결단 덕에
우리 여섯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 번 본 영화이니 일수불퇴니 뭐니 하면서
JH가 어깃장을 놓았으면 모든 게 불발이었을 텐데
JH가 영화관 티켓을 예매하는 헌신으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부부로 살아가는 일이
이인삼각 같다는 생각을 한다.
두 사람이 각자 한 다리씩 묶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부부의 길인 것 같다.
그것은 강제적이 아닌 자발적인 순종이기도 하다.
서로 자기가 가는 방향만을 고집할 때
두 사람의 삶은 고단하고 험할 뿐이다.
다리를 묶고 서로 자기 길만을 고집할 때
그것은 세상에서 제일 힘든 '극한직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두사람이 마음을 맞추고 같은 방향을 향할 때
서로는 서로에게 아름다운 동반자가 되어
이 지상에서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삶은 지옥이 되기도 하고 천국이 되니 말이다.
우리 여섯은 올 9 월 유럽으로 짧은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JB의 희생으로 벌써 여행의 가닥이 다 잡힌 걸로 알고 있다.
세 부부가 서로 한 다리씩 묶고 떠나는
여행에서 우리들은 어떤 세상을 경험하게 될까?
내 마음은 벌써
봄바람처럼 살랑거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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