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축구화 선물
"아빠, 나 Portland에 있는 아디다스 스포츠 용품 매장에 와 있어요.
혹시 필요한 것 있으면 알려주세요.
직원 정용 매장 패스를 얻어서 들어왔는데 모든 물건을 반 값에 살 수 있어요."
2 주 전이었다.
둘째 딸의 전화를 받은 것이.
둘째는 오레곤 주의 어느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과정을 온라인으로 하고 있는데
일년에 몇 차례씩은 직접 가서
강의도 듣고 다른 학생들과 공동 작업을 한다.
그런데 2 주 전에는 포트랜드에 간 김에 어찌어찌 해서
아디다스 직영 매장에 들렸는데
아빠가 축구를 좋아하는 걸 아는 둘째 딸이
혹시 축구에 필요한 스포츠 용품이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
일부러 전화를 한 것이었다.
사실 나는 축구를 하면서
내가 내 돈을 주고 축구화를 산 기억이 별로 없다.
십 몇 년 전에 가족들에게 선물로 받은 축구화를 빼고는
모두 우리 축구 팀 멤버들에게
한 두 켤레 씩 얻어 신으며 지금까지 축구를 해왔다.
그리고 지금 신는 축구화가 수명을 다 할 때
나도 축구를 그만 두려고 작년부터 마음을 먹고 있었기에
둘째 딸이 필요한 게 있냐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려야 했다.
그러는 사이에 둘째는
빨간 색, 하얀 색 푸른 색등의 축구화 사진을
전화기를 통해 보내 왔다.
이렇게까지 아빠에게 축구화 한 켤레 선물하고 싶어하는 딸아이에게
차마 사지 말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얼떨결에 빨간 색으로 한 켤레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렇게 해서
빨간 축구화 한 켤레에 곁들여
빨간 Windbreaker jacket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둘째가 사다 준 축구화는 최신형이었다.
끈을 풀고 맬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
축구화 양 옆으로 고무 같은 재질로 볼록하게 선을 넣어
공과의 마찰력을 증대시킴으로
공을 찰 때 회전력을 조절할 수 있어서
프로 선수들처럼 아름다운 곡선의 궤적을 그릴수 있도록 디자인이 되었다.
처음으로 축구화 다운 축구화를 소유하게 된 기쁨도 잠시,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지금 신는 축구화에 또 하나의 새 축구화의 수명이 다 하려면
축구를 몇 년이나 더 해야 되지?-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지만
박수 받을 만한 실력이나 인품도 부족한 내가
몇 년 더 축구팀에 남아 있음으로 민페를 끼치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을 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부터였다.
최고령자라는 이유 하나로
섬기기보다는 동료들로부터 섬김을 받는 위치가 되고 보니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게다가 나이 들어가면서 없던 기술도 더 무뎌지고
속도도 점점 떨어지기 시작한다.
진작 축구를 그만 두었어야 했는데
같이 축구하는 친구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속앓이를 남 모르게 몇 년동안 해 왔다..
물론 체력이나 기술은 젊은 시절에도
박수 받을 정도가 되질 않으니 조용히 그만 두어도
아쉬워 할 사람이 없겠지만
아직까지 축구를 하는 것은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축구 뿐 아니라
매 주 같이 몸 부대끼며
함께 뛰는 동료들의 웃음 소리 또한
끊기 힘든 즐거움을 내게 선사하기에
은퇴를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어느새 축구화 한 켤레를 더 갖게 되었고
은퇴하려는 생각은 당분간 접어야 할 상황을 맞게 되었다.
사실 십 수 년 동안 의시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부분 거의 매 주 축구를 한 덕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하루이긴 해도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얼굴이 달아 오르게 뛰어다니니
자연 심페기능이 환갑이 지난 지금까지
별 걱정할 필요 없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은퇴를 할까 말까 하는 갈래길에 서 있던 나에게
자의 반 타의 반 축구를 계속하게 한 것은
아무래도 둘째가 선물한 새 축구화 때문이다.
포기하고 싶을 때 마음으로 부축해서
몇 걸을이라도 더 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선물이어서
새 축구화는 여로모로 내게 힘이 되었다.
체력이나 기술 뿐 아니라
나이 많은 내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고
다시 마음을 다집을 수 있게된 것은
오로지 둘째의 마음 때문이다.
축구화를 선물함으로써 아빠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주려는 딸의 마음을 배반하지 않도록
열심히 뛰고 젊은 마음으로 살아야 겠다.
빨간 색과 예쁜 디자인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
즉 아빠가 오랫 동안 건강하기를 바라는 딸의 소망이 담겨서
축구화는 아름다운 선물이 되었다.
그런 딸아이의 소망 때문에라도
더 용기를 내고 열심히 뛰어야 겠다는 도전을
감히 하게 된다.
선물은 받을 때의 기쁨 뿐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감히 마주쳐야 하는 스트레스까지 동반해야
비로소 완전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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