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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발렌타인 데이의 붕어빵

발렌타인 데이의 붕어빵


발렌타인 데이 점심 때가 가까이 되어서

아내가 세탁소에 나타났다.

물론 점심 도시락을 배달하기 위해서였다.

도시락이 든 종이 백을 건네 받는데

다른 날보다 더 묵직했다.


아내는 발렌타인 데이에는 

매 해 한 번도 빠짐 없이

카드와 편지 그리고 초콜렛 한 개를 도시락과 함께 건네 준다.

물론 카드에는 아내의 나에 대한 담담한 사랑의 고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데 올 해는 초콜릿 대신 붕어 빵이 

도시락과 함께 종이 백에 들어 있었는데

온전한 한 마리가 아니라 

반 토막을 내어 머리 쪽만 도시락과 함께 들어 있었다.


"쓰는 김에 화끈하게 한 마리 쓰시지 하필이면 반 토막이람?"


그러나 아내가 하시는 일에는

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뜻이 있는 법이다.


연작안지홍곡지지燕雀安知鴻鵠之志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겠냐만은

결혼 37 년 차에 접어드니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아둔하기 짝이 없는 나도

수박의 속살까지는 몰라도 

껍데기를 핥아 그 맛을 짐작할 정도의 눈치는 생겼다.


카드 속에 첨부한 편지에도

아내는 붕어 머리에 대해 넌지시 언급을 했는데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아내가 붕어 빵의 머리만 백에 넣은 까닭을.


'어두육미'


예로부터 생선은 머리 부분이 맛이 있고

육고기는 꼬리 부분의 맛이 훌륭하다는 뜻이라는 건

어른들은 대충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아내는 내가 비록 바라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나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한다.

그런 아내는 붕어 빵을 반 토막 내어서

나에게 머리 부분을 선뜻 내어 줌으로 해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한 것이다.

실제로 생선은 세로로 토막을 낼 수 없지만

붕어 빵이야 세로로 자르면 머리와 꼬리를 둘이서 평등하게

나눠 먹을 수 있을 텐데도 

굳이 가로로 토막을 낸 그 마음이 보였다.


발렌타인 데이라고 해서 아직까지도 

나에게 장미 한 송이라도 

특별히 받아 본 적이 없는 아내다.


머리에서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이  머리에서 18 인치 떨어진 심장까지 도달해서 

마음이 되고

또 그 마음이 팔과 다리로 옮겨져 

행동이 되기까지의 거리가

나의 경우 측량이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멀다.


그렇게 무심하고 함량 미달인 남편에게

발렌타이 데이라고 해서 

장미꽃 한 송이 받을 희망도 없으면서

카드와 꼬박꼬박 사랑으로 눌러 쓴 편지에 덧붙여 

붕어 빵의 머리까지

남편에게 선물하는 아내의 마음은 무엇일까?


-방탄 소년단을 생각하는 팬들(ARMY)처럼 

우상을 대하는 존경과 사랑의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평강공주가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바보 온달을 거두어준 것과 같은 종류의 측은지심 때문일까?-


이런 쓸데 없는 생각으로 화두를 삼고

붕어 빵을 입 속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는 나야말로 

철 없는 남편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아내의 카드와 편지.



나는 전 날 찍은 사진으로 선물 퉁침


한 손엔 하트 모양의 풍선,

다른 한 손엔 돈 자루.


그림의 떡이긴 하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