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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터키냐,치킨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터키냐,치킨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2018 년 Thanksgiving day



Thanksgiving Day(추수 감사절)는 미국의 고유 명절로서

미국에서는 크리스 마스와 더불어 가장 크고 중요한 날로 기억된다.


추수 감사절은 1621 년에 처음으로 기념하기 시작했는데

청교도들이 매사추세츠 주의 플리무스에 정박한 

그 이듬해 가을에 열린 축제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에 도착한 첫 해 겨울에

뉴 잉글랜드 지방의 혹심한 추위와 영양 실조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목숨을 부지한 청교도들은 

봄이 되자 인근의 미 원주민(우리는 흔히 인디언이라고 부르는)들의 도움을 받아

농사를 짓고 물고기도 잡으며 

신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었다.


가을에 추수를 하고

자기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쳐 준 원주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서

그들을 초대해 사흘 동안 잔치를 벌인 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연원인 것이다,


그래서 보통 전통적인 추수감사절 식단에는

필그림들이 첫 수확을 거두었던

옥수수와 감자, 스트링 빈, 얌(고구마 비슷한 )같은 채소와 더불어

야생 칠면조가 포함된다.


그 때는 가금류를 키울 여력이 없었기에

야생 칠면조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야생 칠면조는 뉴저지 우리집 근처에도 자주 출몰하는

야생으로 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기름기가 별로 없어서 고기가 무척이나 퍽퍽하다.


아무리 공을 들여 요리를 해도

칠면조는 칠면조일 뿐, 닭고기 맛을 따라잡기는 

거북이가 토끼 와 뜀박질 경기를 하는 것과 같이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아는 미국 사람에게 설문 조사를 해 보아도

닭고기 맛은 칠면조 고기에 비해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가정에서 자란 우리 사위 둘도

닭고기에게 맛의 우월함에 표를 던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니 칠면조 고기를 먹으면서도

닭고기를 그리워 하는 풍경을 추수 감사절 저녁에 만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으며

매콤한 라면 타령을 아주 간절하게 하는 것과 같다,


우리 식구들 추수감사절 메뉴 중 하나인 칠면조 요리

언제부터인지 조카 세연의 몫이었는데

박사 과정 때문에 런던에 머무는 동안 몇 해를 

칠면조 요리를 걸러야 했다.


세연이 없는 동안 칠면조 요리를 

우리 큰 딸이 할 때도 있었지만

부득이 칠면조 요리를 걸러야 할 때도 있었는데

그런 때는 'Boston Market'이나 '본촌 치킨'에서

닭고기를 주문해서 추수 감사절 식탁에 올렸다.


칠면조 요리보다 닭고기를 만날 때

우리 두 사위들 표정이 더 밝았던 걸로 기억한다.


올 해는 세연이가 Buckley에서 날아와 칠면조 요리를 했다.

10 년도 넘게 칠면조를 다룬 노하우에다가

냉동 칠면조가 아닌 칠면조로 구어서 인지

고기가 야들야들하고 맛도 좋았다.


훌륭한 맛이 나는 칠면조 고기가 식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젓가락은 다른 한 편에 있는 '본촌 치킨'을 먼저 방문했음을 고백한다.

추수 감사절이 지나고 우리 세탁소 손님 중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추수 감사절 저녁 메뉴로 무엇을 선호하느냐가 문제였다.


"Turkey or Chicken, that is the question"

-칠면조냐, 닭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지만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터키와 치킨 사이에서

전혀 갈등을 겪지 않고

바로 치킨을 선택하는 자유를 누렸다.


사정이 이러 하니 

얼마간 시간이 자나고 나면

추수감사절 식탁에서 칠면조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사실 칠면조는 맛도 맛이지만

요리하는데 여간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맛도 닭보다 덜하고 요리하기도 힘든

칠면조 요리가 거르지 않고

추수감사절 식탁 위에 올려지는 것을 보며

아직도 세상이 살만하다는 밝은 면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처음 청교도들이 추수감사절을 지낼 때는

먹을 것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항해를 하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미국에 와서도 추위와 굶주림으로 또 목숨을 잃었다.


겨우 농사 짓는 법을 배워 추수를 했지만

그 종류나 양은 하찮았을 것이다.

변변히 먹을 고기도 없으니 만만한 것이

야생 칠면조 밖에 없었음은 뻔한 일이었다.


그러니 맛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결국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무엇 때문'이 아니라

'--함에도 불구하고'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칠면조가 맛이 있어서가 아니라

맛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은 것이다.


우리가 식탁에 둘러 앉아

칠면조 고기를 비롯한 음식을 나누는 것은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의 원형을 다시 새롭게 하기 위함은 아닐까?


맛난 닭고기를 아무 생각 없이 먹기보다

맛은 닭고기보다 좀 못할지언정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칠면조 고기가 훨씬 우리 삶을 풍요하게 해 줄 것 같다.


'닭고기냐, 칠면조 고기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고민은 할 것도 없이

칠면조 고기를 선택하는 당당한 자유를 

내년, 그리고 매년 추수감사절에누리고 싶다.

 http://blog.daum.net/hakseonkim1561/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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