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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첫눈

첫눈






아내가 찍어보낸 사진



어제 첫눈이 내렸습니다.


첫눈은 말 그대로 올 겨울에 처음으로 오는 눈이기에

맛뵈기 엿처럼 그냥 살살 내리고 말 줄 알았습니다.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는 

눈과 비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갈피를 잡지 못 했습니다.

기껏 1-2 인치 정도 내릴 것이라고 했는데

어제 오후부터 시작된 눈의 기세는 

전혀 축복이나 낭만 같은 정서적인 것을 함유하고 있는 것 같지 아니하게

그러나 얌전함을 가장해서 내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해가 떨어지고 나니

곳곳에서 거리를 혼돈의 상태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뉴욕과 뉴저지를 잇는 다리 중 하나인 조지 워싱톤 브리지는

이층으로 되어 있는데 

윗 쪽은 차들의 스케이트 장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차들끼리 이리 받고 저리 치이며

액션 영화의 장면을 실제로 보여 주었습니다.


뉴옥시의 외곽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기차역도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멀리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어제 내린 첫눈의 추억은 

달콤한 솜사탕이 아니라

어릴 적 감기 걸리면 하얀 알약을 갈아서 

숟가락 위에 물과 섞어 목구멍으로 넘길 때의

쓴 기억이 떠오를 정도였을 겁니다.


Sadie (친)할머니의 병이 위중해서

병원에 들렸던 사위와 큰 딸도 집에 돌아가지 못 하고

병원 근처의 호텔에서 지난 밤을 네내야 했습니다.

아내는 손주들 보러 갔다가

발이 묶였습니다.


덕분에 손주들은 눈과 할머니로 해서

첫 눈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을 맛 보았습니다.

어제 오후에 걸려온 손주들의 전화 속 목소리에

아이들이 얼마나 들뜨고 기쁜지 

그대로 묻어왔습니다.


첫눈 덕에 부르클린에 직장이 있는 큰 처남과 처제는

아마 집에 가느라 너덧 시간은 족히 걸렸음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먁내 처남은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우리 아파트에 올라와 소파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어제 뉴욕 일대에 내린 첫눈은 사람들마다

다른 느낌,

다른 경험을 하게 했습니다.


부르클린의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후로

출퇴근의 원죄에서 벗어난 나는

그저 무심하게 첫눈을 맞았습니다.


어제 오후에서 밤으로 가는 시간은

출퇴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겐 지옥이었을 것이고

집에 가는데 1 분이 채 안 걸리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무덤덤했고

우리 손주들에게는 

황홀하고 즐거운 천국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시간이 흐르며 참으로 많은 변화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무작정 즐겁고 행복했던 유아기 첫 눈의 기억이

젊은 시절엔 설레임과 기다림으로 변했고,

산전수전을 겪은 이제는 무덤덤하거나

불편하고 귀찮은 것으로 바꾸어 갑니다.


첫눈이 내려도 아무 걱정 없이 

무작정 신기해 하고 기뻐하는 

우리 손주들이 부럽습니다.


밤 새 눈이 그치고 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엔 날이 개고 

해도 가끔씩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밉니다.


사람은 기억하는 동물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한 기억에 따라 

어떤 상황에 반응하고 느끼는, 

기억의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눈이 내리면 일부러라도 핑계를 대서

아름다운 기억들을 만들어

내 삶을 채워가야 할 것 같습니다.

천국은 죽어서야 갈 수 있는 곳이지만,

내가 마음 먹으면 살아서도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 눈이 또 올까?

아이들처럼 손 꼽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내 삶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우리의 삶은

순간과 순간이 이어져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괴로운 기억도,

무덤덤했던 시간도

이제부터는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가고 싶습니다.



다음에 눈이 내리면 아내에게 데이트 신청이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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